등록 : 2006.04.02 19:08
수정 : 2006.04.02 19:08
영국 마지막 ‘고등판무관실’ 철수로 지배력 퇴조
중국 광물자원등에 군침… 정치·결제 영향력 강화
중국이 남태평양에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1830년대 이후 이 지역에 드리워진 영국의 지배력을 날려버릴 기세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중남미에서 중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급속히 갉아먹고 있는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남태평양에서 거대한 권력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다.
영국은 최근 이 지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얼마 전엔 통가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고등판무관실을 철수했다. 고등판무관실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에 설치돼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를 가리켜 “1830년대부터 계속돼 온 영국의 남태평양 지배가 종언을 고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앞서 키리바시와 바누아투에서도 고등판무관실을 철수했다.
반면, 중국의 남태평양 진출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순방길에 오른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5일 중국 외교사상 처음으로 피지를 방문해 ‘제1회 중국·태평양 경제발전협력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피지·사모아·통가 등 남태평양 6개 국가 정상들이 참석하는 이 포럼엔 중국 고위 관리와 기업가 등 200여명이 수행한다.
중국은 남태평양 지역에 9곳의 공관을 두고 있다. 이 지역에 전통적으로 이해관계가 깊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공관 숫자보다 많다. 최근엔 이들 국가의 사회간접자본 구축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무상원조도 확대하고 있다. 1천만달러를 들여 피지와 키리바시에 체육시설을 세워주고, 통가 전력회사엔 1700만달러를 원조했다. 사모아에선 텔레비전 방송국을 통째로 지어줬다.
중국의 남태평양 진출은 이 지역의 풍부한 자원 확보와 국제무대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태평양은 목재와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천연가스와 석유 개발 가능성도 높다. 중국은 최근 파푸아뉴기니의 니켈 광산에 6억2500만달러를 투자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피지의 <아일랜드비즈니스>는 “중국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남태평양 국가들의 표를 사들여 국제정치에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태평양에서 영국의 퇴조와 중국의 부상은 이 지역의 안보지형에도 미묘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 지역의 맹주인 오스트레일리아가 중국의 진출을 ‘위협’으로 받아들일 경우 긴장이 예상된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주 뉴질랜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권력이동’으로 부르며, 뉴질랜드의 견제를 주문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싱크탱크 독립연구센터의 수전 윈디뱅크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밍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영국과 미국의 관심이 유럽과 중동으로 이동한 사이 남태평양에 권력의 공백이 발생했다”며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존재감마저 희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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