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8 17:50
수정 : 2005.02.18 17:50
[세계를보는눈]
인구의 74% 가량이 수니파인 시리아는 사회주의 성향에 아랍 민족주의가 가미된 ‘세속정권’이 기묘한 부자세습을 통해 장기 집권하고 있다. 1970~80년대엔 반독재 저항에 나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철퇴를 가하기도 했다. 반면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이른바 ‘신정체제’로 이행한 이란은 시아파 성직자들이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다. 이들 두 나라가 지난 16일 ‘외부세력의 위협’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할 뜻을 밝히고 나섰다.
두 나라는 여러 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수천년 전 셈족과 페르시아족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들 나라를 중심으로 찬란한 고대문명의 싹을 틔웠다.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시리아는 이란 편에선 유일한 아랍국이었다. 이제는 ‘중동의 화약고’ 쯤으로 전락한 이라크와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는 점도 닮은 꼴이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이들 두나라에서 유입된 ‘테러리스트’가 이라크 저항세력을 이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리아가 ‘테러지원국’이니 ‘깡패국가’ 따위로 불리는 동안, 이란은 ‘악의 축’에서 ‘폭정의 전초기지’로 숨가쁘게 내몰리고 있다. 이날 두나라가 나름의 ‘자구책’을 내놓은 것도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뒤 요동치는 중동정세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17일 다시 성명을 내어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범이슬람권의 대동단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집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아랍국들이 미국의 동맹국인 상황에서 이런 주장이 현실화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국의 일방적인 압력에 무방비 상태로 내몰렸던 ‘깡패국가들’이 서서히 자기 선언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지금은 물러난 미 국무부내 강경파 존 볼턴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이라크 침공을 한달여 앞둔 2003년 2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라크 다음은) 시리아와 이란·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게 다음 수순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들 세 나라가 최근 일전불사를 외치며 미국의 압박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합뉴스〉는 1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내용을 따, 모하메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지난 9일 김창용 테헤란 주재 북한대사를 만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북한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제조와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것은 그 다음날인 10일이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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