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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11 21:02 수정 : 2006.05.11 21:02

‘펜타곤 페이퍼’ 폭로한 에이브러햄 로젠탈 뇌졸중 사망

세계적 권위지인 오늘날의 〈뉴욕타임스〉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 에이브러햄 로젠탈 전 편집인이 10일(현지시각) 뇌졸중으로 입원해 있던 뉴욕 마운트시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숨졌다. 향년 84.

캐나다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로젠탈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다섯 남매 중 넷을 잃는 불행과 가난 속에서 자랐다. 1943년 대학생 통신원으로 〈뉴욕타임스〉와 인연을 맺은 그는 기자로서, 편집간부로서 〈뉴욕타임스〉 발전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이듬해 정식 입사한 그는 19년간 특파원 등으로 활약하고, 이후 편집자-편집국장-편집인으로 신문 제작과 경영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로젠탈은 1959년 심층취재를 통해 폴란드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써 추방당했는데, 이 기사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편집국장이던 1971년에는 〈뉴욕타임스〉 역사에 기념비가 된 ‘펜타곤 페이퍼’ 폭로를 주도했다. 백악관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트남전의 비밀과, 국민을 속이는 정부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문서를 반드시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간부로서 그의 능력도 기자 때의 재능만큼 빛났다. 60년대 말 〈뉴욕타임스〉는 깊이있는 기사를 내지만 무미건조하다는 혹평에 시달렸고, 판매와 광고수입이 줄어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로젠탈은 과감한 지면개편으로 위기 극복에 앞장섰다. 이제는 보편화된 섹션 개념을 도입해 정보 욕구와 읽는 재미를 충족시켜 판매부수를 늘렸고, 이는 광고수입 증대로 이어졌다. 그의 지면 혁신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것이어서, 반발도 많았다. “신문을 확장하려면 좀더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끌면서도 신문의 성격은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실을 바로잡는 전통으로 〈뉴욕타임스의 명성을 더욱 높인 고침기사 제도도 그가 만든 것이다.

반면 독선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미즈’(여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미스’와 ‘미시즈’를 구분하지 않고 여성을 부르는 말)나 ‘게이’ 등의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1986년 퇴직한 후 1999년까지 13년간 칼럼니스트로 〈뉴욕타임스〉를 위해 일했다. 첫 칼럼과 마지막 칼럼은 ‘이 칼럼을 읽어보세요’라고 똑같은 제목을 달았다. 이후 2004년까지는 〈데일리뉴스〉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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