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7 18:26
수정 : 2005.02.27 18:26
지난 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발표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준’은 최근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와 투자대상 다변화를 통한 경기부양, 이른바 한국판 뉴딜 정책과 함께 최대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안정자산인 채권 등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고, 주주로서 투자대상 기업의 기업경영에도 소극적이었던 연기금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사회적 책임투자(SRI) 운동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리적 투자나 사회적 투자로도 알려진 사회적 책임투자의 기원은 1700년대 퀘이커교도들의 무기 및 노예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거부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와 같은 투자대상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이후 시민권과 여성의 권리에서 노동문제, 그리고 반전과 환경문제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이 개념은 70-80년대 대형연기금을 중심으로 한 미국 투자자들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 인종차별국가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투자를 철수한 적도 있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환경보고서나 좀 더 넓은 의미의 사회보고서 등을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 방식을 선별(Screening)투자라고 부른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투자방법으로는 주주로서 투자대상 기업에 대한 개입, 예컨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기업과의 대화, 기업에 대한 제안 그리고 주주총회 등에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연기금의 수익률을 제고하는 방법이 있다. 이외에도 특정 공동체의 발전이나 대안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대안투자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선별투자 기준으로서 윤리성, 사회성, 공공성 등이 종교적인 것에 치우치거나 과도하게 추상적인 개념에만 의존함으로써 적극적 개념화와 이에 기초한 실행계획을 만들고 실천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데 있다. 또 의결권 행사에 있어서도 수익자들인 주주들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금 수탁자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수탁자 책임 원리(fiduciary duty)를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투자를 위한 행위 원리나 절차적 기준 등에 대한 언급도 없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일부 지배구조펀드나 환경펀드 등이 조성됨으로써 사회적 책임투자의 기준이 구체화되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익성 제고만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철저히 주주자본주의적인 것이다.
연기금 자산 운영의 목표는 수익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익성의 논리와 공공성, 안정성의 원리들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익성의 논리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수탁자 책임 원리를 사회적 책임투자 원리로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 연기금의 사회적 투자, 의결권 행사를 통한 본격적인 경영 감시 등의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송원근/진주산업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