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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6 17:04 수정 : 2005.03.06 17:04

흔히 튀니스를 ‘중동의 파리’라고 부른다. 가장 서구·세속화된,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프랑스화된 중동국가인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일상은 진한 향기의 카푸치노 한잔과 ‘봉주르!’라는 가벼운 프랑스식 인사로 시작된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튀니지인들은 외국인과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튀니스의 최대 번화가 부르기바 거리는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하다. 서쪽 끝에 ‘개선문’이 솟아 있고, 벤자민과의 상록수로 잘 조경된 가로수 사이로 자리잡은 노천카페에서는 튀니지앵(?)들이 커피를 마시며 하루종일 담소를 나눈다. 게다가 번화가를 가로지르는 울긋불긋하게 치장된 전차의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아랍 땅임을 의심하게 된다.

튀니지의 서구·세속화는 사회제도와 법률에서도 쉽게 발견되며 ‘반이슬람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튀니지 여대생들은 히잡(무슬림 여성들의 스카프)을 쓰고 등교할 수 없다. 예컨대 튀니지의 최고 교육기관인 만누바대학의 정문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돼 히잡을 착용한 여대생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다른 아랍 이슬람 국가들과는 달리 튀니지에서는 일부일처제가 명문화돼 있고, 남편에 의한 일방적 이혼과 여성의 조혼(17살 이하 결혼) 불허, 여성의 의사와 관계없는 정혼 등을 금지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튀니지는 아랍세계에서 변종 또는 이단아로 곧잘 불린다. 그러나 이는 표피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튀니지는 이슬람 원정군이 북아프리카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튀니스 남서부 도시 카이로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사원 시디 오크바 대사원이 있어 튀니지의 이슬람 정복역사를 대변해준다. 오늘날에도 튀니지 인구의 98%가 이슬람신자로서, 이슬람의 발상지인 요르단을 비롯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보다도 오히려 이슬람신자 비율이 높다. 개방적이고 세속화된 사회 분위기와 달리 90% 이상이 라마단 금식월 동안 단식을 실행하고 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31년 동안 튀니지를 통치했던 부르기바 전 대통령은 샤리아(이슬람법) 법원 폐지, 이슬람재단 국영화, 이슬람 교육기관과 코란학교의 국·공영화 등 세속적인 사법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다. 부르기바 대통령의 반이슬람적 사회개혁운동은 당시 부패한 이슬람종교단체에 염증을 느꼈던 중산층과 빈민층 그리고 엘리트 청년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1960년대 초 부르기바 대통령이 라마단 금식월에 방송에 출연해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라마단 단식이 경제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등 이슬람 율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자 즉각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비록 급속한 세속적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국민들 대다수가 하루 5번 예배, 라마단 단식, 성지순례 수행 등을 준수할 정도로 이슬람적 정서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튀니지인들은 아랍인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튀니지에서 만난 지식인과 서민들에게 이라크 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묻자 100%가 반미감정과 반기독교 정서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한 젊은 택시기사는 9·11 동시테러 조작설을 제기하면서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규탄했다. 1980년대 레바논에서 쫓겨난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그 본부를 튀니지 땅에서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튀니지인의 아랍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튀니지는 전형적인 외유내강 국가다. 겉으로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회제도 차원에 국한되며, 오히려 그 내부에서 이슬람전통과 아랍 정체성을 단련하고 있다.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고, 이슬람사원 또한 쉽게 찾을 수 없지만 튀니지에 이슬람사원이 없고 기도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튀니지는 어느 중동국가보다 강한 아랍 이슬람의 색채를 숨기고 있을 뿐이다. 국가 차원의 근대화와 발전을 위해서.장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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