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6 20:55
수정 : 2005.03.06 20:55
올해 들어 우리 경제가 다소나마 경기회복의 징후를 보이자 모두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중심축인 미국에서는 재정적자, 무역적자, 가계적자 등 여러 거시적 불균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우리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4126억달러에 달한 2004 회계년도 미국의 재정적자가 최고기록을 2년 연속 경신하자, 일각에서는 이를 집권 2기 부시 행정부가 최우선 정책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사회보장제도 민영화의 그럴듯한 구실로 삼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최근 3~4년 미국 재정적자의 급팽창은 사회보장 부담의 증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군비지출 증대와 고소득층을 겨냥한 일련의 대형 감세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한결같이 관대한(?) 사회보장제도를 재정적자의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지난 20년 동안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은 미국의 무역적자에서 중국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일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부시 정부가 ‘약한 달러’ 정책과 미국의 최대 흑자국들인 한·중·일·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절상 압력으로 무역적자의 누적 증가를 억제해 보려고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우선 중국이 위안화 절상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은 엔화와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약한 달러 정책과 동아시아 통화 절상과 같은 환율조정이 실제 미국의 무역적자 개선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무역적자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재정적자, 무역적자와 함께 2000년대 들어 미국 경제의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가계적자다. 과거 미국의 가계적자는 기본적으로 극도로 낮은 가계저축률 때문에 발생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지속적인 저금리 아래서 주택 및 부동산투자를 위한 차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계적자의 급증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가계적자는 부동산거품과 함께 미국 거시경제의 커다란 불안요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막대한 저축 부족과 적자가 어떻게 해소되는 것일까? 하나는 미국 기업의 풍부한 저축이다. 일반적으로 국민경제에서 기업은 투자주체이자 적자주체인데 비해 미국 기업의 경우 내부유보가 많아 기업이 저축의 핵심주체로 기능해 왔다. 2000년 정보통신기술(IT) 거품 붕괴 이후에는 90년대 신경제시대 때처럼 공격적인 기업경영과 설비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설비투자가 현금 흐름에 못 미쳐 기업저축이 크게 늘고 있다.
둘째,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즉, 동아시아 채권 국가들의 달러 표시 자산 증대가 미국의 3대 적자를 아주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다. 최근 흥미로운 사실은 금융기관, 기업, 개인투자가 등 민간 부문의 대미 증권투자보다는 외환당국을 중심으로 한 공적 부문의 대미 채권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실물적 측면 뿐만 아니라 금융적 측면에서 전례 없이 긴밀해진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 사이 관계에서 80년대 플라자합의나 루블합의와 같은 환율·금리 협조체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21세기 세계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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