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3 17:23
수정 : 2005.03.13 17:23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사회 최대의 화두는 ‘혁신’(이노베이션)이 됐다. 그런데 ‘혁신’에 대한 강조가 참여정부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성장이 창의적인 개인들이 주도하는 혁신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 위에, 생화학·통신·컴퓨터·에너지 등의 분야를 대상으로 ‘혁신을 주도한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시상까지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경제 분야로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사회정책이나 사업모델의 새로운 착상과 시도 또한 과학기술 못지 않게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 분야의 혁신상은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에게 수여?磯?. 그는 자활에 필요한 소액 창업자금을 근로의욕이 높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담보대신 짝을 지어 제공하는 ‘소액신용’(마이크로 크레딧) 개념을 그라민 은행을 통해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그라민 은행은 빈곤의 늪에 빠져 있던 수많은 농촌 주민들에게 소액융자를 제공하는 등 방글라데시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전세계 60여 국가로 성공모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윤동기로 무장한 ‘기업가’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립을 모색하는 이타적인 사회운동가에 의해서도, 혁신이 주도될 수 있다는 것을 ‘시장주의’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매체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유누스의 이번 수상은 큰 의의가 있다.
유누스의 소액신용 모델은 자유방임과 시장경제의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이 운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클린턴은 아칸소주 지사 시절 미국의 대표적인 소액금융 기관인 ‘굿 페이스 펀드’의 경영에 참여했으며,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전국·국제적 차원에서 이 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의 소액금융 운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개도국과 달리 창업이 훨씬 어렵고 영세사업이 전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낮으며 소액금융에 대한 잠재적 수요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액금융 프로그램들은 이용자 숫자가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외부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소액금융 단체들은 사업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컨설팅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빈곤층 자활지원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화는 자본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간다. 이런 상황에서 소액금융 운동은 사회적 약자의 배제라는 세계화의 흐름 그 자체를 저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장의 폭력으로부터 빈곤층을 보호하고 자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제도의 하나다. 유엔이 올해를 ‘마이크로 크레딧의 해’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소득과 부의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자활지원 소액금융 운동이 담당해야 할 몫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03년에 출범한 사회연대은행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박종현/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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