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가 장악한 후세인 정권 수뇌부에 포진했던 유일한 기독교계 인사인 타리크 아지즈 전 부총리는 자수했지만 혁명평의회 위원으로서 이란, 쿠웨이트를 상대로한 전쟁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후세인 정권 시절의 최고위층 인물은 후세인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전 혁명평의회(RCC) 부의장. 미군에 의해 1천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알-두리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와함께 이라크 보안군 등을 겨냥한 각종 저항공격을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창 속에 갇히거나 지하로 은신한 이들을 대신해 급부상한 집권세력은 탄압받는 세력으로 분류됐던 시아파 아랍족과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지난 1월30일의 총선은 이를 확인해 주는 자리였다.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으면서 막후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아파 최고지도자아야툴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킹 메이커'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다. 또 시아파 강경 지도자로서 2차례에 걸쳐 반미항쟁을 주도하고도 건재한 무크다다 알-사드르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라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로 떠올랐다. 시아파에서 배출한 이브라힘 알-자파리 총리 지명자의 과도정부나 시아파 주도의 제헌의회가 이들 두 지도자의 의중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라크 인구의 15∼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연합정당도 정치권에서 제2당의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쿠르드족 양대 지도자인 잘랄 탈라바니와 마수드 바르자니의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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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속의 후세인 정권인사들 |
이라크 전쟁은 집권세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존 집권층은 개전과 거의 동시에 도망자로 변신했다.
특히 미군이 포커용 카드로 수배전단을 만들어 추적에 나선 55명의 핵심인사중 지금까지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을 포함해 44명이 체포되거나 사살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중 가장 극적인 비운의 인물은 역시 중세 십자군 전쟁때 예루살렘을 수복한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을 꿈꾸면서 아랍권의 맹주를 자처했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그는 미국의 침공 직후 혁명평의회 부의장 시절을 포함한 34년간의 철권 통치를뒤로 하고 도피생활에 들어가 2003년 12월13일 자신의 고향인 티크리트의 농가주변토굴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미군에 체포됐다.
바그다드공항내의 미군기지내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세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가장 추앙했던 살라딘을 배출한 쿠르드족 학살 혐의 등으로 특별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그의 재판은 영구헌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올 10월께 본격화될 예정이다.
후세인의 두 아들로 페다인 민병대와 공화국수비대를 각각 이끌면서 심복역할을했던 우다이(사망당시 38세)와 쿠사이(" 36세)는 후세인 체포 5개월전인 2003년 7월22일 은신중이던 모술 지역에서 미군 수색팀과 교전끝에 처참하게 사살됐다.
이밖에 1988년 할아브자 마을의 쿠르드족 독가스 학살을 지휘한 혐의로 `케미컬알리'란 악명을 얻은 알리 하산 마지드 전 남부군사령관 등 핵심권력을 누렸던 대부분의 인사들이 감방신세를 지고 있다.
전쟁 발발전까지 후세인 정권의 대변인으로서 미국을 향해 거친 독설을 퍼부었던 모하메드 사이드 알-사하프 전 공보장관은 예상외로 자수의 길을 선택한 뒤 미군측에 협조해 편안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수니파가 장악한 후세인 정권 수뇌부에 포진했던 유일한 기독교계 인사인 타리크 아지즈 전 부총리는 자수했지만 혁명평의회 위원으로서 이란, 쿠웨이트를 상대로한 전쟁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후세인 정권 시절의 최고위층 인물은 후세인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전 혁명평의회(RCC) 부의장. 미군에 의해 1천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알-두리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와함께 이라크 보안군 등을 겨냥한 각종 저항공격을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창 속에 갇히거나 지하로 은신한 이들을 대신해 급부상한 집권세력은 탄압받는 세력으로 분류됐던 시아파 아랍족과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지난 1월30일의 총선은 이를 확인해 주는 자리였다.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으면서 막후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아파 최고지도자아야툴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킹 메이커'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다. 또 시아파 강경 지도자로서 2차례에 걸쳐 반미항쟁을 주도하고도 건재한 무크다다 알-사드르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라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로 떠올랐다. 시아파에서 배출한 이브라힘 알-자파리 총리 지명자의 과도정부나 시아파 주도의 제헌의회가 이들 두 지도자의 의중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라크 인구의 15∼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연합정당도 정치권에서 제2당의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쿠르드족 양대 지도자인 잘랄 탈라바니와 마수드 바르자니의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서울/연합뉴스)
수니파가 장악한 후세인 정권 수뇌부에 포진했던 유일한 기독교계 인사인 타리크 아지즈 전 부총리는 자수했지만 혁명평의회 위원으로서 이란, 쿠웨이트를 상대로한 전쟁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후세인 정권 시절의 최고위층 인물은 후세인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전 혁명평의회(RCC) 부의장. 미군에 의해 1천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알-두리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와함께 이라크 보안군 등을 겨냥한 각종 저항공격을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창 속에 갇히거나 지하로 은신한 이들을 대신해 급부상한 집권세력은 탄압받는 세력으로 분류됐던 시아파 아랍족과 수니파 쿠르드족으로, 지난 1월30일의 총선은 이를 확인해 주는 자리였다.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으면서 막후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아파 최고지도자아야툴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킹 메이커'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혔다. 또 시아파 강경 지도자로서 2차례에 걸쳐 반미항쟁을 주도하고도 건재한 무크다다 알-사드르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라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로 떠올랐다. 시아파에서 배출한 이브라힘 알-자파리 총리 지명자의 과도정부나 시아파 주도의 제헌의회가 이들 두 지도자의 의중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라크 인구의 15∼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연합정당도 정치권에서 제2당의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쿠르드족 양대 지도자인 잘랄 탈라바니와 마수드 바르자니의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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