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본 세계현장 ③ 경제도약 내달리는 터키
하늘은 흐릿했다. 공기는 매캐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낮보다는 조명이 찬란한 밤이 더욱 아름다웠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 사이로 흐르는 보스포루스해협과 그 사이를 잇는 두 개의 다리, 수많은 유적과 현대식 고층건물의 혼재,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다종다양한 인종 …. ‘2700년 고도’ 이스탄불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그랜드 바자르’(큰 시장)였다.
유적 사이로 난 도로를 마구 건너는 젊은이들,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경쟁하듯 솟구치는 고층 아파트들 …. 이스탄불의 혼돈은 ‘앞으로 돌진하는 터키’의 축소판이었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이은 신흥성장국으로 티브이티(TVT, 터키·베트남·타이), 비스타(VISTA, 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아르헨티나)가 꼽히는 가운데, 터키가 빠짐없이 끼는 이유를 이스탄불의 일상에서 잡을 수 있었다.
유럽·중동·중앙아시아 연결…신흥성장국 합류
연 6~7% 성장…EU가입 불투명·정치 불안도
|
이스탄불의 유럽 쪽과 아시아 쪽을 잇고 있는 보스포러스해협의 보스포러스 제1교. 최근 급격하게 도시인구가 늘어나면서 출퇴근 시간의 다리 교통 체증이 매우 심해졌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 터키 이즈미트에 있는 현대자동차 현지법인 공장에서, 터키 노동자들이 엑센트를 조립하고 있다. 오태규 기자
|
내수시장 7천만명 ‘기회의 땅’=터키 제1의 도시 이스탄불에는 전체 인구 7200만명 가운데 1200만명이 산다. 전체 면적의 3% 정도에 전체 인구의 16.7%가 몰려 있다. 비공식 인구까지 치면 1500만명이나 된다. 지금도 사람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다. 1970년의 인구는 불과 100만명 정도였다. 한국에서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이농인구가 서울로 몰렸듯이, 지금 터키에서는 이스탄불이 ‘그때의 서울’이다. 이런 탓에 5년 전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했던 터키의 농업인구는 지난해 28%로 줄었다. 자동차의 집중도는 더하다. 약 1천만대 가운데 30%가 이스탄불 시내에서 씨름을 하고 있다. 서울의 출퇴근 전쟁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혼란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외국 투자자들이 이런 황금어장을 놓칠 리 없다. 더구나 25년 동안 세 자리 수를 넘나들던 물가상승률이 2004년부터 한 자리 수 이하로 잡혔고, 최근 5년간 평균 7.5%의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엘도라도’다.
2002년 6억2200만달러에 불과하던 외국인투자 금액은 2003년 7억4500만달러→2004년 12억9100만달러→2005년 85억3700만달러→2006년(1~8월) 105억544만달러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앙카라 빌켄트대학의 세이피 타슈한 터키외교정책연구소장은 터키 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를 △1980년부터 현재까지 자유경제·개방 체제를 유지하면서 잘 대처했고 △교육이 잘 된 젊은 인구가 풍부하며 △지난 20년 동안 평균 6~7%의 성장률을 꾸준하게 올린 점 등 세 가지로 설명했다. 코트라 이스탄불무역관 이은우 관장은 “터키는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지역을 연결하는 교차로로서의 유리한 지정·경제학적인 위치, 저렴하고 숙련되고 풍부한 노동력, 7천만명이라는 커다란 내수시장의 존재라는 큰 이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유럽과 미국 쪽이 투자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업도 진출 의욕=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의 투자·교역·관광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77년 개설됐다가 4년 만에 문을 닫은 이스탄불총영사관(총영사 백성택)을 1월 재개설했다. 현재 터키에는 삼성·엘지·현대를 비롯해 모두 26개사가 진출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95년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120㎞ 떨어진 이즈미트에 합작공장을 세워 97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엑센트·스타렉스·그레이스 3종 6만여대를 생산해 2만7천여대를 내수로, 3만3천여대를 유럽연합 쪽에 수출했다. 터키법인 사장인 김중겸 상무는 “지금 터키에서 굴러다니는 차 10대 가운데 1대가 현대차일 정도로 현대차에 대한 호감이 좋다”며 “지난해에는 환율이 불안정해 고전을 했지만, 경제가 안정을 되찾고 성장 잠재력이 매우 커 올해부터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기준 맞추기’ 숙제=2005년부터 개시된 유럽연합 가입 협상은 터키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좋은 무기다. 하지만 터키 시민 사이에는 유럽연합 쪽이 자신들보다 수준이 낮은 루마니아나 불가리아의 가입은 허락하고, 자국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데 대해 “이중 기준”이라고 반발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만난 핫산(24·이스탄불공대 졸업)은 “우리의 자존심까지 굽혀가면서 꼭 유럽연합에 가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분개했다. 그럼에도 터키 지도층의 유럽연합 가입정책은 확고했다. 터키 외무부의 쉬하 우마르 아주국장은 “터키가 유럽연합 정회원국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경제에 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앞으로 15년 정도 시간을 두고 모든 것을 유럽연합 기준에 맞추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그 기준을 다 맞춘 뒤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느냐 마느냐는 유럽연합이 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유럽연합의 미적거리는 태도를 넌지시 비난했다.
|
오태규 편집장
|
2005년부터 개시된 유럽연합 가입 협상은 터키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좋은 무기다. 하지만 터키 시민 사이에는 유럽연합 쪽이 자신들보다 수준이 낮은 루마니아나 불가리아의 가입은 허락하고, 자국에는 거부감을 보이는 데 대해 “이중 기준”이라고 반발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만난 핫산(24·이스탄불공대 졸업)은 “우리의 자존심까지 굽혀가면서 꼭 유럽연합에 가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분개했다. 그럼에도 터키 지도층의 유럽연합 가입 정책은 확고했다. 터키 외무부의 쉬하 우마르 아주국장은 “터키가 유럽연합 정회원국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경제에 큰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앞으로 15년 정도 시간을 두고 모든 것을 유럽연합 기준에 맞추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그 기준을 다 맞춘 뒤에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느냐 마느냐는 유럽연합이 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유럽연합의 미적거리는 태도를 넌지시 비난했다.
‘떠오르는 터키’라고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정치가 가장 대표적인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알리 카바르 현대자동차 현지법인 회장은 “5월 대통령선거와 10월 총선이 있는데, 이것을 잘 넘기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딜러인 우차르도 “올해 두 차례 있는 선거를 큰 사고 없이 넘기는 것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이밖에 쿠르드족 문제, 불안한 중동 정세, 관료의 부패, 공식 시장의 60%에 이르는 지하경제의 존재도 언제나 경제안정을 흔들 수 있는 폭탄으로 거론된다.
결론적으로 누가 ‘터키의 미래는 어떨 것 같냐’고 묻는다면, 나는 “장기적으로 가능성이 큰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겠다.
이스탄불 / 오태규 민족국제 편집장
ohtak@hani.co.kr
세이피 타슈한 외교정책연구소장 인터뷰“유럽연합, 터키 없이 발전 없다”
|
빌켄트대학의 세이피 타슈한
|
빌켄트대학의 세이피 타슈한 터키외교정책연구소장은 터키의 최대 쟁점인 유럽연합 가입 문제에 대해 “터키와 유럽연합은 이미 특수한 관계(1998년 관세동맹 체결)에 있고, 터키의 일부가 유럽의 일부분이므로 옳은 방향 설정”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는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정치·사회·경제구조를 유럽 기준에 맞춰야 하며, 터키가 유럽연합이 원하는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이 터키의 가입을 꺼리는 이유를 “터키가 종교적으로 이질적이고 인구가 많으며 면적이 커, 단기간에 가입하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 의회는 인구비례에 따라 나라별로 의원을 배정하는데, 인구가 독일 다음인 터키의 가입이 유럽연합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유럽연합은 터키의 가입 없이 발전할 수 없다”며 “2014년에서 2021년 사이에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그는 유럽연합에 터키의 가입이 중요한 이유로 △노동력이 노후화한 유럽 국가들의 활력을 불러오려면 평균 연령이 28살일 정도로 젊은 터키 노동력의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점 △유럽연합이 중동·중앙아시아·발칸을 가장 잘 연결할 수 있는 터키를 빼놓고 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정책이 국부인 케말 아타튀르크의 세속화 정책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케말 때는 나토도 유럽연합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념이 유럽 국가를 근대화 모델로 봤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이라며 유럽연합 가입 정책을 ‘제2의 케말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이 좌절된 것을 두고 터키인들 사이에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터키인은 기본적으로 유럽연합 가입을 원한다. 자존심이 손상돼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앙카라/오태규 편집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