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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8 17:37 수정 : 2005.03.18 17:37

페르난도가 지난 9일 샌디에이고 카운티 청사 앞에 마련된 이라크 전사자 추모기념물 속에 있는 아들의 군화 앞에 비망록을 펴놓고 앉아 있다. AP 연합



꼭 2년 전인 2003년 3월28일 아침, 페르난도 수아레즈 델 솔라(49)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집에 해병대원 3명이 찾아왔다. 한명은 군목이었다. 이들을 보자마자 아내 로자(46)는 울부짖었다. “저 사람들을 돌려보내라.” 예상대로였다. 한 군인이 페르난도에게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영웅입니다. 그는 적 총탄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그달 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지 1주일만이었다.

“전쟁 명분·아들 사망 원인 부시, 우리가족 두번 속여”

페르난도는 17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아직도 눈물을 그치질 않는다고 했다. 그는 눈물을 거뒀다. 아들 알베르토(당시 20)의 죽음 이후 그는 맹렬한 반전운동가로 변신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시민단체 ‘글로벌익스체인지’ 후원으로, 1년 내내 미국을 돌아다닌다. 학교, 교회, 집회장에서 그는 “우리에게 더이상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이라크 미군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일엔 미국 전역에서 동시에 열리는 ‘이라크전 2주년 반전집회’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조지 부시는 두번 (우리 가족을) 속였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속인 게 첫번째다. 두번째는 내 아들의 사인을 속였다. 처음엔 교전 중 숨진 걸로 알았다. 그러나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해병대원 알베르토 상병은 미군이 투하한 집속폭탄(수백개의 소형폭탄을 한꺼번에 지뢰처럼 흩뿌리는 폭탄)의 불발탄을 밟아 숨졌다’는 보도를 들었다. 내 아들의 부대에 배속된 종군기자가 쓴 기사였다.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페르난도 가족이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건 1997년이었다. 마약이 판을 치는 멕시코 국경마을을 벗어나,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싶다는 아들과 세 딸의 요청 때문이었다. 아들 알베르토는 마약에 중독된 8살짜리 아이가 죽어가는 걸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고 한다.

“내 아들이 해병대를 지원한 것도, 거기서 열심히 하면 마약단속 특수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03년 2월 이라크로 떠나기 직전, 알베르토는 나에게 ‘이 전쟁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이라크 어린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12월, 전사한 다른 미군 부모 몇명과 함께 이라크를 방문했다. 아들이 숨진 장소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곳에서 흙을 한줌 떠와, 집 앞의 나무에 뿌렸다. 그때 영화배우 숀 펜도 동행했다. 그가 숀 펜을 알아보지 못하자, 숀 펜은 매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당신의 아들을 죽인 이라크인들을 미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라크인들은 내 아들이 죽은 걸 알고 있었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거기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내가 그들에게 적의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인들의 생각은 이중적이었다. 미군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건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미군 주둔에는 반대했다. 후세인이 몰락한 뒤에도 약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당시 이라크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그는 강연 외에도 ‘아즈텍 전사’( www.guerreroazteca.org )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히스패닉계 학생들에게 미군에 지원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이들의 대학진학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히스패닉계 학생들은 대학등록금을 지원받기 위해 미군에 자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페르난도는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인과 한국 병사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이라크 전쟁은 비도덕적인 전쟁이다. 이라크인들이 한국인에게 적대행위를 한 적이 없는데 왜 병사들이 거기 있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 알베르토는 이라크 전쟁의 첫 미군 희생자 중 한사람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전사자 수는 1519명으로 불어났다. 미군 사망소식은 이제 더이상 미국에서도 주요 뉴스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는 “내 아내는 아들의 죽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병사가족 편지 읽으며 한없이 눈물”

‘어머니들의 외침’ 등
군인가족 반전운동 확산

이라크 전사자, 주둔군 가족들의 모임인 ‘병사가족들의 외침’이란 단체 웹사이트엔 가족들의 편지가 수시로 올라온다.

“군인 부인모임에 갔다가 이 단체 얘기를 듣고 방문했습니다. 여기 올라온 글을 읽고 한없이 울었습니다.”(제이미 스미스)

“조지 부시 대통령께. 내 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 수호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로라 맥카시)

2002년 11월 발족한 이 단체는 지금은 2천여명의 군인가족을 회원으로 둘 정도로 성장했다. 이 단체 외에도 ‘어머니들의 외침’ ‘평화를 위한 군인들’ 등이 지역별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워싱턴 주에선 수십명의 병사 가족들이 크리스틴 그레고어 주지사를 면담했다. 모두 워싱턴에서 차출돼 이라크에서 근무 중인 주 방위군(예비군) 가족들이다. 이들은 그레고어 주지사에게 “이라크 근무 중인 주방위군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백악관에 압력을 넣으라”고 요청했다. 비슷한 일은 오리곤과 버몬트에서도 벌어졌다.

병사 가족들은 시위, 집회에서도 항상 선두에 선다. 이들이 내거는 구호는 간단하지만 호소력이 있다. “이라크 병사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전쟁에는 반대한다.” 이들은 19일 이라크 침공 2주년 때엔 미 82공수사단과 특수전사령부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파에트빌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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