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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요구시위 지난해 말 모로코 수도 라바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실직자들이 모여 일자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민들이 평화적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은 아랍 군주국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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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다시 깊이보기 1. 아라파트 이후의 팔레스타인
2. 석유와 내전-수단의 명담
3. 이슬람주의 마지막 불꽃, 알제리
4. 중동의 관광대국 꿈꾸는 튀니지
5. 리비아, 투항인가 변신인가
6. 모로코의 정치개혁 실험
7. 중동평화와 이집트의 선택
8. 이슬람주의 산실, 알아즈하르 대학
9. 유헙행 둘러싼 터키의 고뇌
10. 좌담 좌·우·이슬람 정당들 총선거쳐 하원 구성
‘국왕중심’ 은 뚜렷…서구 입헌군주제와 달라
이슬람당 약진…알카에다등 득세 우려도 지난해 12월28일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여만에 모로코 해안도시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모로코의 광활한 초원은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영화 카사블랑카(‘하얀 집’이라는 뜻)를 떠올리며 시내로 들어서자, 갑자기 자동차 배기가스 냄새가 진동했다. 석유가 나지 않는 모로코에서 정부는 가스차 운행을 권장하고 있다. 택시 등 대중교통은 차량이 매우 낡아 연신 뿌연 매연을 내뿜고 있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200달러에 불과한 국가에서 새 차에 휘발유를 넣고 운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거리의 가로등과 건물 안 전등도 대체로 흐린 편이었다. ‘서역’의 의미를 가진 ‘마그립 지역’ 국가들(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모리타니) 가운데 모로코만이 유일하게 입헌군주제 이슬람 국가다. 그러나 이를 현대 서구식 입헌군주제와 혼동해선 안된다. 사법·입법·행정 등 3권이 분리돼 있긴 하지만, 국왕에게 거의 절대적인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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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상 모코로 국왕은 최고 종교지도자이자 국가 원수, 국가 통일의 상징인 동시에 국가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이슬람과 국헌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국왕은 총리 임명권 및 총리의 제청에 따른 각료 임명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각료 가운데 국방장관은 국왕이 겸임하며, 내무·외무·이슬람 장관은 국왕이 직접 지명한다. 각의를 주재하고, 법률 공포 및 의회 해산권도 쥐고 있으며, 군 참모총장도 겸직하고 있다. 이밖에도 주요 공무원과 대사 임명권, 조약 비준권, 사면권 및 비상사태 선포권까지 국왕에게 귀속돼 있어 사실상 전권을 고스란히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로코 정치체제의 특징을 현지 무함마드 5세 대학의 압델라 메진 교수는 한마디로 “국왕은 믿는자의 사령관인 동시에 정치의 수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전통 이슬람 국가의 칼리프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왕정에 서구의 의회제도를 도입한 모로코 특유의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법·제도적으로는 국왕이 임명하는 직능· 지역 대표인 상원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하원이 존재하지만, 모로코 의회의 권한은 실질적으로 매우 제한돼 있다. 시장경제·프랑스식 거리풍경 모로코 곳곳에 왕궁들이 산재해 있고, 경찰·군인·왕궁 수비대·정보국 요원들이 겹겹이 왕궁을 보호하는 것과는 달리 수도 라바트에 있는 국회의사당은 초라할 정도로 작은 것을 봐도 국왕의 권한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모로코를 찾은 외국인들의 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반 국민들의 종교생활과 정치생활은 완전히 분리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스러운 복장과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활동, 언론·집회의 자유, 이슬람 국가임에도 가끔씩 눈에 띄는 술집들, 프랑스식 거리 카페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젊은이들,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 등으로 보아 겉으로는 식민 모국이었던 프랑스와 흡사하다. 이슬람사원이 눈에 많이 띄지도 않는다. 라바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일자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주변 시민들은 시위에 대해 흥분하지도 비판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정부가 평화적 시위를 보장해 주고, 시민들은 그것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은 아랍 군주국가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로코는 중동아랍국가들의 정치발전 모델이 될 수 있을까? 1956년 독립한 모로코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해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특히 하산2세 국왕 재임기간(1961~1999) 초기였던 1962년엔 ‘국민투표에 의한 입헌군주제’로 정치체제 변동을 성공적으로 이루기도 했지만, 알제리와 벌인 국경전쟁(1963)과 지방반란(1972년)이 이어졌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1963~83년 무려 네차례나 군사쿠데타 시도가 벌어졌으며, 폭동과 전국적 규모의 시위가 잇따르면서 정국불안은 끝없이 계속됐다. 하산 국왕은 정치체제를 바꾸는 동시에 야당과 재야진영에 대한 강경대응에 나서는 한편, 외국인 소유 토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배분하는 양면전술을 구사했다. 또 이웃 모리타니와 서부 사하라 분할 및 합병에 관한 비밀조약을 맺었고, 리비아와는 ‘국가연합’ 수준의 통합을 위해 ‘아랍-아프리카 연맹 조약’을 체결하는 등 외교력을 높이는데도 힘을 기울이면서 통치기반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그가 1996년까지 4차에 걸친 헌법 개정을 통해 국왕의 절대권력은 유지하되 국민의 시민적 자유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치변동을 주도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국왕은 종교와 정치의 수장으로 정부 핵심 요직의 임면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며, 사법기구의 상위에서 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권위까지 인정받기에 이른다. 여성의원 비율 아랍권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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