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0 21:32
수정 : 2005.03.20 21:32
노동운동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기억되는 것은 1919년 1월15일이다. 그날은 독일의 노동운동가 로자 룩셈부르그가 평생을 함께 했던 노동운동 동지들에게 버림받은 끝에 살해당한 날이다. 그러나 그날이 치욕인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친족살해는 노동운동의 분열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이런 분열은 노동운동의 전망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을 낳았으며 그 결과는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파시즘 정권의 수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노동자정당이 다시 선거를 통해 이 야만적인 극우주의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결과를 빚었던 것이다. 독일 노동운동은 이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후 노동조직의 재건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특정 정치적 노선을 표방하지 않도록 합의하였다. 소위 통합노조로 알려져 있는 중립적 조직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새삼 로자의 사건을 떠올린 것은 사회적 교섭안 때문에 좌초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안타까운 행보 때문이다. 세번째로 사회적 교섭안이 상정된 대의원대회마저 다시 폭력으로 얼룩진 파행으로 끝나고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가 증폭되면서 앞으로 이 문제를 수습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수습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반드시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진영의 분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운동을 포함한 모든 운동은 목표와 수단간의 거리를 가지고 있고 이 거리 때문에 운동 내부에는 언제나 강온파 혹은 좌우파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내부의 대립이야말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운동의 적응력을 높여서 운동을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목표는 운동의 정체성을, 수단은 운동의 대중적 결합력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내부의 대립이 운동을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운동 전체의 분열로 발전해버릴 수도 있으며 로자의 비극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노총의 이번 사태는 우리 노동운동이 내부의 대립을 운동의 동력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부토론회에서 충분한 합의가 모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를 강행한 지도부와 초보적인 조직 내부 민주주의조차 무시한 반대파는 모두 조직의 분열이 가져올 위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식인이 성명으로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데다 정부도 노동계의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비정규노동법안의 처리를 예고하고 있으며 보수언론까지 노동계의 분열을 확대포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다시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한다면 로자의 비극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현대중공업의 제명으로 분열의 첫발을 내디딘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분열의 발전으로 수습하는 어리석음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강신준/동아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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