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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침공 4돌을 사흘 앞둔 17일(현지시각), 전세계적으로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수천명이 가두행진을 벌이며 이라크전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헝가리 시위대 수천명도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에서 횃불을 들고 대열을 지어 평화를 뜻하는 거대한 기호를 만들고 보이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한 어린이가 얼굴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1000여명이 모인 반전시위에 참여했다.(왼쪽부터) 워싱턴 부다페스트 아테네/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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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심어놓은 시아-수니파 증오 대물림
내전 성격-주체 등 조기종결 전망 희박
“비겁한 놈, 죽여버릴 테다!”6살짜리 꼬마 하이다르 파라즈는 수니파 “테러범” 역할을 맡은 동생 아바스에게 장난감 총을 겨누고 외쳤다. 여기서 파라즈는 시아파의 마디 민병대다. 바그다드 시아파 지역 아이들은 버려진 차에 탄 수니파 차량폭탄 테러범을 공격하는 놀이도 한다. 최근 <에이피>(AP) 통신은 4년 전쟁과 시아-수니파 분쟁이 아이들의 놀이문화에도 끔찍한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10대부터 총을 집어드는 수니파 청소년들의 원한도 이에 못지 않다. 2005년 8월31일, 바그다드의 티그리스강 다리를 건너던 시아파 순례자들은 “폭탄테러다”라는 거짓말에 겁을 집어먹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1천명 가까운 익사 또는 압사자가 나온 사고현장에서 수니파 청년 오스만 알오베이디는 6명을 구하고 자신은 탈진해 익사했다. 최근 이 곳을 찾은 <타임> 취재진은 당시 그와 함께 구조에 나선 한 청년한테서 “알오베이디는 짐승들(시아파)을 구하려다 목숨을 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2003년 3월20일 새벽 5시34분(현지시각) 바그다드에 날아든 미군 토마호크 미사일들의 폭발음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은 4년 동안 침략세력에 대한 항전과 종파 전쟁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2월 수니파 저항세력이 시아파 성소인 사마라의 아스카리야사원의 황금돔을 폭파한 뒤 전쟁 양상은 ‘종파간 인종청소’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수니파 조직은 차량폭탄 공격, 시아파 조직은 고문·살해를 ‘전매특허’ 삼아 매일 100명 안팎의 무고한 사람을 살육하고 있다.
이라크가 내전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부인하던 미 국방부도 14일 보고서에서 이라크 상황의 “일부 요소들은 내전에 걸맞다”고 시인했다. 미국은 종파간 권력 다툼, 이란의 개입이 문제를 키운다며 책임을 돌린다. 서구세력이 물러난 지 50여년 만에 영국군과 함께 쳐들어온 미국에 대한 반감이 ‘미국과 결탁했다’는 비난을 듣는 시아파에 대한 수니파의 공격을 촉발했다는 점은 외면한다. 미국은 또 민주주의를 심겠다며 선거를 강행해 분열을 조장하고, 지난해 말 후세인 전 대통령이 교수형을 당하게 만들어 종파분쟁에 기름을 부었다.
문제는 외세와 저항세력, 시아-수니파의 싸움이 엉켜 있는 상황이어서 뾰족한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군과 이라크 정부는 미군 증파와 함께 전개되는 바그다드 안정화작전이 성과를 내 폭력 빈도가 줄었다고 자찬한다. 그러나 폭력은 집중 수색전이 벌어지는 바그다드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번져가고, 독가스 공격과 방화까지 동원되고 있다. 17일 서부 라마디와 팔루자에서는 3건의 염소가스 폭발로 8명이 숨지고 미군 6명을 비롯한 350명이 부상했다.
제임스 피어런 스탠퍼드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 최신호 기고문에서 2차대전 이후 내전 125건의 평균 지속 기간이 10년으로 조사됐다며, 이라크의 내전 기간을 결정하는 요소들을 분석했다. 그는 △종파조직들의 무장이 충분하고 △시아-수니파 모두 승리를 확신하고 △협상 주체들이 정리되거나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비극적이게도, 내전이 더 진행돼야 권력분점이 해법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격적인 내전을 1년여 치른 이라크인들한테는 암울한 진단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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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4년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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