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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민 1.5세의 스트레스 |
17살에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나와 3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정체성 문제는 같은 한국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커가면서, 또 나 자신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리고 생활이 바빠지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겨가면서 사라진 느낌이나, 어느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제 내가 이민 나온 나이와 비슷한 시기의 두 아들들이 예전의 나처럼 정체성의 혼란과 방황을 겪을 것 같아 불안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소위 자식을 위하여 떠나는 이민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환경과 문화와 언어에 적응해야 하는 이민 1.5세의 스트레스는 초인적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남의 나라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소수민족으로써 느끼는 현지인의 텃세와 편견, 그리고 외모적으로 어딘가 열등해 보이고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동양인으로써 겪는 열등감으로 이민 1.5세는 어린 시절서부터 주눅들기 쉽다.
그런 자식의 슬픔을 이해해주어야 하는 부모는 그 미안함을 소위 물질로써 보상해 주려 하기 일쑤다. 그리고 개발 독재시대의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안되면 되게 하고 막히면 뚫고 가라'는 지상 명제는 그 물질적 보상과 더불어 자식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적용된다. 안되면 다른 것하고, 막히면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서구 사회에서 한국인의 그런 편집적 스트레스는 서구인 사회에서는 독종이나 지독한 사람들로 비추어지는 그런 인종적 편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한국인은 아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한국인 이민사회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이민자의 영혼과 휴일을 책임지며, 한 지역에 심지어 수십 개씩 창궐하여 번창하는 교회이다. 그런 종교 단체에서는 이민 1.5세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어떠한 존재로 남아 있는가 생각하면, 그런 교회의 분위기도 감수성 예민한 젊은 1.5세에겐 또 다른 스트레스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선택 받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교회의 부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보이지 않는 신의 용서와 은총으로 남보다 뛰어나야 하고, 남보다 잘나고 똑똑해야 선택 받은 증거로 여겨지고, 나아가서 한국인의 자랑거리고 지역 사회의 관심거리가 되니 말이다.
그럼으로 못나고 뒤떨어짐은 나태와 무능력의 증거로 소외 받고 잊혀지기 일쑤이니, 나의 소견으로는 선택받음이란 신의 기준이 아닌, 한국인 어른들의 기준에 들어와야 함을 말하는 것뿐이다. 그럼으로 그런 교회의 가르침과 더불어 말 많고 소문 빠른 한인 사회는 어린 이민 1.5세에게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지 모른다.
진정으로 자식을 앞날을 생각하고 떠나온 이민이고, 이민 사회의 앞날을 책임질 1.5세이고 2세들 이라면, 한번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도 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 것 같은 요즘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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