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시민혁명이 발생했던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 모두 수도는 야당 지지자들이장악하고 있어 정권 교체가 용이한 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아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야당 지지자들의 총선 결과 취소 및 대통령직 사임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다며 버텨왔다. 특히 23일에는 남부 지방 시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의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과검찰총장을 해임하고 강경파인 케네슈베크 두셰바예프 내무장관을 기용하면서 유혈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신임 내무장관은 시위대의 평화적인 집회에는 개입하지 않겠지만 정부 건물 장악을 기도할 경우 무력으로 진압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경 대응원칙을 밝혔다. 24일자 일간 이즈베스티야의 여론조사 결과 37.98%가 현 정부가 승리할 것으로예상했으며 혁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경우는 29.40%에 그칠 정도였다. 하지만 아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비슈케크 시위에 대해 경찰병력에 대해 총격금지를 지시, 비슈케크는 곧장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과정에서 한편으론 야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여줬지만 그는 시민혁명의 두려움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옛 소련 국가 지도자들이 자국에는 절대 시민혁명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아카예프는 오히려 시민혁명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언급해온 것도 이를 방증한다. 23일 자신을 지지하는 친여세력의 거점으로 믿었던 수도 비슈케크가 야당 지지자들이 대규모 시위로 일순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장래를 장담할수 없는 유혈사태보다는 권력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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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 '시민혁명'의 과정과 의미 |
야당 지지자들이 24일 키르기스스탄 정부청사를 장악하고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지난 1991년부터 집권해온아카예프 독재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키르기스의 시위 사태는 장기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점 뿐만 아니라 옛 소련 국가중 그루지야(2003년), 우크라이나(2004년)에 이어 3년 연속 시민 혁명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옛 소련 국가 지도자들은 독재화 성향을 갖고 있는 만큼어느 정권도 시민들의 지지 없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키르기스 사태를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키르기스 사태는 올들어 아카예프 대통령이 스스로 총선을 앞두고 '시민혁명'우려를 제기하면서 사태의 향배가 첨예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1월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찾아가 시민혁명의 우려를 전달하고 총선 전략을 논의했으며 외부의 선동가들이 키르기스에 잠입해 시위를 준비중이라고 주장하는 등 소요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해왔다.
특히 그의 아들과 딸을 모두 총선에 출마시켜 당선시키는 등 아카예프 일가의계속된 독주는 야당 및 시민들의 결집을 강화시켰다.
지난 13일 총선 2차 투표가 끝난 직후 오슈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진행됐던 시위는 지난 21일 오슈와 잘랄-아바트시의 정부 청사 건물이 점거되면서 본격화됐다.
하지만 이때만해도 아카예프 대통령과 여당 인사들은 수도인 비슈케크가 친여지역인 만큼 정부 전복은 어렵다고 믿고 야당을 압박했다.
실제 시민혁명이 발생했던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 모두 수도는 야당 지지자들이장악하고 있어 정권 교체가 용이한 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아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야당 지지자들의 총선 결과 취소 및 대통령직 사임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다며 버텨왔다. 특히 23일에는 남부 지방 시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의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과검찰총장을 해임하고 강경파인 케네슈베크 두셰바예프 내무장관을 기용하면서 유혈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신임 내무장관은 시위대의 평화적인 집회에는 개입하지 않겠지만 정부 건물 장악을 기도할 경우 무력으로 진압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경 대응원칙을 밝혔다. 24일자 일간 이즈베스티야의 여론조사 결과 37.98%가 현 정부가 승리할 것으로예상했으며 혁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경우는 29.40%에 그칠 정도였다. 하지만 아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비슈케크 시위에 대해 경찰병력에 대해 총격금지를 지시, 비슈케크는 곧장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과정에서 한편으론 야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여줬지만 그는 시민혁명의 두려움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옛 소련 국가 지도자들이 자국에는 절대 시민혁명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아카예프는 오히려 시민혁명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언급해온 것도 이를 방증한다. 23일 자신을 지지하는 친여세력의 거점으로 믿었던 수도 비슈케크가 야당 지지자들이 대규모 시위로 일순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장래를 장담할수 없는 유혈사태보다는 권력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실제 시민혁명이 발생했던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 모두 수도는 야당 지지자들이장악하고 있어 정권 교체가 용이한 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아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야당 지지자들의 총선 결과 취소 및 대통령직 사임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다며 버텨왔다. 특히 23일에는 남부 지방 시위에 대한 미온적 대응의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과검찰총장을 해임하고 강경파인 케네슈베크 두셰바예프 내무장관을 기용하면서 유혈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신임 내무장관은 시위대의 평화적인 집회에는 개입하지 않겠지만 정부 건물 장악을 기도할 경우 무력으로 진압하겠다고 밝히는 등 강경 대응원칙을 밝혔다. 24일자 일간 이즈베스티야의 여론조사 결과 37.98%가 현 정부가 승리할 것으로예상했으며 혁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경우는 29.40%에 그칠 정도였다. 하지만 아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비슈케크 시위에 대해 경찰병력에 대해 총격금지를 지시, 비슈케크는 곧장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과정에서 한편으론 야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여줬지만 그는 시민혁명의 두려움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옛 소련 국가 지도자들이 자국에는 절대 시민혁명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아카예프는 오히려 시민혁명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언급해온 것도 이를 방증한다. 23일 자신을 지지하는 친여세력의 거점으로 믿었던 수도 비슈케크가 야당 지지자들이 대규모 시위로 일순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장래를 장담할수 없는 유혈사태보다는 권력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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