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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보 MD 폭풍속으로
미·러 충돌 겉과 속미 “이란 북한 등 깡패국가 겨냥” 딴청
러 ‘강대국’ 과시·푸틴 3선 노림수 분석도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이 최대 국제 안보현안으로 떠올랐다. 냉전의 두 주역이었던 미국과 러시아가 이 문제를 두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냉전 이후 최악’ ‘신냉전’ ‘새로운 불화의 시대’ 등의 수사가 난무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엠디 체제가 핵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엠디 논란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갈등의 뿌리, 동유럽 엠디=미국은 폴란드에 요격미사일 10기, 체코에 레이더 기지 배치를 추진 중이다. 미국은 이란 등 ‘불량국가’를 빌미로 내세우고 있다. 본토는 물론 유럽의 자국군과 동맹국 안보를 위해서는 동유럽 엠디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부시 대통령은 4일 체코, 8일 폴란드를 잇달아 방문하는 등 물러설 기미가 없다. 러시아는 자국 견제를 위한 포위망 구축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에 대한 보호장벽을 세우고 있다”며 “북한과 이란은 미국이 요격해야 할 만한 로켓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이 유럽 미사일 겨냥해, 핵충돌 등을 언급한 것은 확고한 대결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29일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리는 ‘무력시위’도 벌였다. 러시아는 옛 소련 위성국가였던 동유럽이 미국과 서방의 영향권에 포섭되는 데 대한 위기감이 상당하다. 동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에 이은 이번 조처로 러시아는 자신들이 포위당하는 것으로 느낀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분석했다. 옛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그루지야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것도 러시아의 위기감을 부추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평화기획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 등은 러시아의 전략적 입지를 좁혀 왔다”며 “러시아는 오랫동안 참아왔지만 코 앞에 미 엠디 체제가 구축되자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신냉전 치닫나
푸틴 핵충돌 가능성 높인다 G8 긴장
당분간 대치 불가피…내달 정상회담 주목
러시아의 노림수=전략적 군사균형을 깨는 미국의 엠디 구축에 러시아는 대체로 침묵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푸틴 대통령의 행보에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 배경은 고유가에 힘입은 급속한 경제발전이다. 2002~2006년 3배로 치솟은 유가는 러시아에 평균 6.8%의 고도 경제성장을 안겼고, 대외부채도 대부분 갚았다.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자국에 의존하는 유럽의 목줄도 틀어쥐고 있다. 옛 소련 붕괴 뒤 빚더미 위에 올라 무시당하던 러시아가 아니라, 새로운 강대국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엠디 체제 반발에는 국내외의 정치적 노림수도 있다. 6~8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벌어질 코소보 독립 등 각종 논란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고, 위기상황 조장으로 대통령 3선 연임을 위한 구실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타협 가능성은?=동유럽 엠디를 둘러싼 미-러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군사적 충돌로 점화될 가능성이 낮은 국제정치적 대립이다. 부시 대통령은 4일 “냉전은 끝났다. 러시아는 적이 아니다”며 달래기에 나섰다. 2008년과 2009년 푸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퇴진이 예정돼 있어, 양쪽이 강공 일변도로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7월1일 열릴 양국 정상회담은 미-러 관계의 향방을 가르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워싱턴 무기통제협회(ACA)는 “유럽 엠디 체제를 보류하고, 더욱 야심찬 무기통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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