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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야당과 시민단체 및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정치개혁 압력에 밀려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다고 천명한 데 이어 지난 9일 이집트 의회가 복수후보가 출마하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뒤 자축하고 있다. 카이로/AP 연합/font> 중동 다시 깊이보기 1. 아라파트 이후의 팔레스타인
2. 석유와 내전-수단의 명담
3. 이슬람주의 마지막 불꽃, 알제리
4. 중동의 관광대국 꿈꾸는 튀니지
5. 리비아, 투항인가 변신인가
6. 모로코의 정치개혁 실험
7. 중동평화와 이집트의 선택
8. 이슬람주의 산실, 알아즈하르 대학
9. 유헙행 둘러싼 터키의 고뇌 10. 좌담 독재청산땐 지도국가 재부상 가능성
아들 후계자 등장 요식행위 가능성도
대통령 ‘행차’ 풍경 한국 과거와 닮아 지난 1월 중순 이집트 남부 수에즈를 찾았던 날은 때마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현지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수에즈 시내 전역은 10m 간격으로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고, 대통령이 이동하기로 예정돼 있는 길가마다 동원된 학생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이집트 국기를 손에 들고 있었고, 곳곳에서 대통령을 환영하는 펼침막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모두가 쌀쌀한 겨울날씨에 떨면서 언제 지나갈지도 모르는 대통령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웅크리고 서 있는 남녀학생들의 모습은 우리와는 달랐지만, 불과 20~30년 전 우리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착잡했다. 이집트는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도 엄청나지만 카이로 시내에서도 중세와 현대가 교차하고 빈부의 격차가 너무 커 보인다. 교민과 유학생들은 최근 외곽 고속도로가 건설됐고 최고급 호텔을 비롯한 초고층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고 자랑하듯 얘기했지만 7년만에 다시 가본 카이로는 특유의 건물색깔 때문인지 천년 전에 지어진 모스크들과는 다른 차이나 변화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공공기관 건물에 대한 위압적 경비와 ‘호텔’ 간판을 단 변변찮은 건물들에서도 엄격한 검색이 이뤄질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무장요원들의 보호가 한층 더 삼엄해진 것만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낫세르 정권땐 혁명철학 수출 1952년 파루크 왕정체제가 낫세르가 주도하는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무너진 뒤 사다트 정권과 현 무바라크 정권에 이르기까지 이집트는 권위주의적 독재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군사혁명의 첫 주자인 낫세르는 이집트를 아랍세계의 중심국가로 만든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였다. 그는 미-소 냉전체제에서 비동맹 외교정책을 주창하면서 아랍세계는 물론 제3세계의 지도자로 올라섰다. 낫세르는 공화정 체제로 아랍세계를 통일하려 했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보수왕정 국가들에 자신의 혁명철학을 수출하기 시작함으로써 아랍세계에서도 냉전체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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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독재끝 민주화 숨통, 야당약세·빈곤 곳곳 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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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복수 후보 출마와 직접·비밀투표 등을 뼈대로 하는 대통령 선거제도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을 의회에 요구하고 나서 세계가 놀라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수도 카이로의 모노피아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대통령은 모든 정당들이 참여하는 복수 입후보자에 대한 직접·비밀투표로 선출될 것”이라고 밝히고, 이에 필요한 헌법개정을 의회에 요구했다. 이집트에서 직접 경선을 통해 대통령이 선출되면, 이는 1952년 ‘낫세르 혁명’ 이후 계속돼 온 50년 군부독재에 마침표를 찍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화 바람은 아랍세계에서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숨진 야세르 아라파트의 뒤를 이어 올해 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후임 수반으로 마무드 아바스가 자유선거를 통해 당선됐고, 불안전한 치안상황 아래서도 이라크에서 60% 가량의 유권자가 참여한 가운데 선거가 치러졌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사상 첫 지방선거가 실시된 바 있다. 이처럼 보수왕정체제와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의 대표지역으로 간주돼온 아랍세계에도 민주화를 향한 선거 훈풍이 불고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외부적 요인으로 미국의 압력을 들 수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내부적 요인으로 <알자지라> 등 아랍 위성방송의 영향을 들 수 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은 아랍세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등장한 요인의 하나로 전근대적 독제체제를 지목하고, 아랍권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를 압박해 왔다. 미국의 민주화 압력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통령 직선제 수용에도 절대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1월 이집트 경찰이 야당 지도자 아이만 누르를 체포하자, 이에 대한 항의로 3월로 예정됐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이집트 방문을 전격 취소하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압박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집트를 중동평화의 중재자로 올려 세운 후원국이며 연간 20억달러를 원조해 주고 있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알자지라>의 역할도 크다. 1996년 설립된 <알자지라>는 아랍의 시각으로 아랍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랍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방송은 미국의 중동정책과 이에 동조하는 아랍정권을 비판함으로써 서구와 일부 아랍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알자지라>는 언론통제와 정보부족으로 소외된 아랍 대중들에게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독재에 저항하는 힘을 모으는 역할을 했고 아랍세계에서도 민주화 담론이 형성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집트의 민주화 바람이 민주적 제도로 정착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야당세력의 약세, 경제적 빈곤, 정치와 종교의 불분명한 경계, 그리고 중산층의 허약성 등이 민주화의 장애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 시작된 아랍세계의 민주화 바람은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세계에 계속 변혁을 요구하는 불씨가 될 것이다. 박종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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