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2 17:56
수정 : 2007.06.22 18:03
관타나모에서 세상을 향해 시가 날아들었다.
쿠바 미군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수감자 17명의 시 22편을 담은 84쪽의 시집, `관타나모에서 온 시들:수감자들이 말한다'(아이오와대 출판부)가 오는 8월 미국에서 출판된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전장에서 붙잡은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어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채 가둬온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말을 건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33살의 바레인 청년 주마 알두사리는 절망에 가득 찬 `죽음의 시'를 보냈다.
“내 피를 가져가오/내 수의와 주검의 남은 부분도 가져가오/무덤에 외롭게 누운 내 주검, 사진을 찍어 세상을 향해 보내주오/재판관들에게/그리고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신념과 공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내주오/세상 앞에서, 그들이 죄의식의 짐을 지도록/이 죄없는 영혼에 대해/그들이 짐을 지도록/아이들과 역사 앞에서 지치고 죄없는 이 영혼에 대해/“평화의 수호자”의 손에 고통 받는 이 영혼에 대해”
그는 2003년부터 파키스탄에서 붙잡혀 관타나모에 수감돼 있다. 그는 이미 12번의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관타나모의 목적은 사람들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고 나는 파괴되었다”고 썼다. 그는 독방에 수감되기도 했고, 동맥을 끊고 침대 시트로 목을 맨 것을 변호사가 발견하기도 했다.
수단 출신의 사미 알 하지는 `알자지라' 카메라맨이었다. 그는 9.11 이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있는 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취재하러 가라는 전화를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 이후 관타나모에 끌여간 것으로 그는 아프간과 관타나모에서 수많은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의 시 `수갑을 찬 채 모욕 당하며'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미국에 대한 환멸을 써내려 갔다.
“나무에 앉아 비둘기가 울때면/뜨거운 눈물이 내 얼굴에 흐른다/종달새가 지저귀면/나는 내 아들에게 해줄 말을 생각한다/모함마드야 아빠는 고통을 당하고 있단다/절망 속에서 신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압제자들은 나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지/그들은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니면서/나에게 동포들에 대해 간첩질을 하라 하지/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주장하면서/그들은 나에게 돈과 땅,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도 주겠다고 하지/그 유혹이 마음을 번개처럼 사로잡지/그렇지만 그들의 선물은 뱀이야/뱀의 독처럼 입에는 위선이 가득하지/그들은 엄청난 자유를 가지고 있고/의견의 자유도 있지/그건 좋은 것이야/조작은 정의가 아니야/미국 당신들은 고아들의 등에 올라타 매일 그들을 겁에 질리게 하지/부시 똑바로 알아둬/세계는 이제 오만한 거짓말장이에 대해 깨닫고 있어/신이여 나의 슬픔과 눈물을 드립니다/나는 향수병에 걸려 있고 억압당하고 있어/모함마드야 나를 잊지마/신을 두려워 하는 아버지의 뜻을 지지해줘/수갑 채워진 채 모욕당하며/내가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지/내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지/수갑과 밤과 고통과 눈물의 끝에 어떻게 내가 시를 쓰고 있지?/내 영혼은 성난 바다와 같이 분노로 들끓고 열망으로 가득차 있어/나는 죄수가 되었지만, 죄를 지은 것은 나를 붙잡은 사람들이다/나는 두렵다/주여 아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소서/신이여 옳은 이들에게 성공을 주소서”
이들의 시는 미군 당국이 가장 두려워한 ‘무기’였다. 미군 당국은 수감자들의 시가 위험한 암호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 쓰기를 철저히 차단했다. 연필과 종이도 얻을 수 없었던 수감자들은 식사 시간에 나오는 스티로폼 컵에 돌 조각으로 시를 새겨 돌려 읽었고, 치약을 잉크 삼아 시를 쓰기도 했다. 시는 이들이 지옥과 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도구이자 출구였다. 대부분은 이전에 시를 써본 적이 없었지만 원통함과 그리움을 써내려 갔다. 관타나모에 수감됐다 2005년 풀려난 모아젬 벡은 “나의 시가 관타나모 밖에 알려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병 속에 메시지를 넣어두는 것처럼 시를 써나갔다”며 “시가 없었다면 미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 시는 대부분 군 당국에 몰수됐지만, 한 변호사가 살아남은 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수감자들을 만나기 위해 관타나모 수용소를 여러번 방문했던 일리노이대 법학교수 마크 팔코프 변호사는 우연히 얻은 시 속에서 수감자들의 절망과 분노,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발견했다. 그는 다른 변호인들에 연락해 다른 시들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시들은 미군 당국의 철저한 검열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여러 편은 금지 판결을 받아 시집에 실리지 못했다. 시집에 실린 시는 대부분 아랍어로 쓰여진 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들이다.
`사실일까?'
“비가 온 뒤에 풀이 다시 자라난다는 게 사실일까?/봄이 되면 꽃이 다시 피어난다는 게 사실일까?/새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사실일까?/연어가 강물을 가로질러 다시 돌아간다는 게 사실일까?/사실이야. 사실이야. 이건 모두 기적이야/그렇지만 우리가 관타나모에서 풀려날 날이 온다는 게 사실일까?/어느날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게 사실일까?/꿈에서 나는 항해를 하지. 우리집 꿈을 꾸지/모두가 내 일부인 나의 아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아내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해/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분들인 내 부모님과 함께 있기 위해/나는 집으로 가는 꿈을 꾼다. 이 새장을 벗어나/그렇지만 당신 내말을 듣고 있나?/재판관 내말을 듣고나 있냐고?/우린 죄가 없어, 여기 우리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나를 풀어줘, 우리를 풀어줘, 어딘가에 아직도/정의와 연민이 세상에 남아있기라도 하다면!”
이 시를 쓴 오사마 아부 카디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선교단체 ‘타브리키 자마트’와 함께 자선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미국은 타블리키 자마트가 아프간에 이슬람전투원들을 공급했다고 주장한다. 카디르는 2001년 11월 아프간 칸다하르 근처에서 체포했다. 그의 고국 요르단에서 그는 가족들에게 헌신적인 트럭 운전사로 알려져 있다. 관타나모에서 그는 수형번호 651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이후 미국은 약 800명을 관타나모에 수감했고, 현재 약 380명이 소송을 할 권리도 뺐긴 채 갇혀 있다. 미 의회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미 법정에서 그들의 수감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박탈했다. 이들에 대한 가혹 행위와 고문은 국제적으로 수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수감자들 중 일부는 실제 알카에다 전투원으로 밝혀졌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고, 대부분 미군에 협조하는 현지 경찰이나 정보당국이 몸값 등을 노리고 붙잡아 미군에 넘겨준 억울한 수감자들로 알려져 있다. 시집을 편집한 팔코프 변호사는 “수감자들은 초강력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 있다가 억울하게 붙잡힌 사람들”이라며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고 많은 이들은 자신의 처지와 정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위의 글은 `인디펜던트'와 `로이터통신' 등에 실린 기사들과 시들을 자료로 한 것이다. 위에 실린 시들의 전문은 `인디펜던트'에 실려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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