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29 22:55
수정 : 2007.07.2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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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류재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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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인도가 27일 2년여 협상 끝에 민간핵협력협정을 최종 타결했다. 두 나라 정부는 협정에 대해 “양국 관계의 역사적 이정표”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번 핵협정은 21세기 유일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이 자국의 30년 핵 비확산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로 흔들리고 있는 국제적 핵비확산체제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비판도 받을 만하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가입을 거부한 인도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했다. 인도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에 버금가는 특별예외국 지위를 부여해 비확산체제의 근본틀을 깬 꼴이다. 인도는 핵무기 제조용 우라늄 비축량이 부족하다. 인도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핵기술과 핵연료를 도입해 보유 핵무기를 늘릴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다.
이런 파장을 의식해 두 나라 정부는 타결된 협정문 자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번 협상을 이끌었던 니컬러스 번스 차관과 아닐 카코다르 인도 원자력위원장 등의 입을 통해 나온 얘기들을 종합해 보면, 인도는 22개의 원자로 가운데 14개 민수용 원자로에 대해 ‘부분적으로’ 원자력기구의 사찰을 허용하기로 했다.
미국 쪽은 더 많은 양보를 했다. 미국은 인도가 핵실험을 하더라도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는 조건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했다. 1974년 인도 첫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인도 제재를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이번 협정은 ‘하이드법’을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미 상원은 인도와 핵협정 협상을 허용하는 이른바 하이드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인도가 핵실험을 하면 미국이 제공한 핵연료를 회수할 것과 재처리 때 미국의 동의를 받을 것 등을 규정한 바 있다.
번스 차관은 “인도는 비확산체제 밖에서 규칙을 준수했고, 인도를 끌어들임으로써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게 됐다”고 미국의 ‘이중잣대’를 옹호했다. 미국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인도와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구축에 나선 것은 중국과 러시아 견제라는 전략적 목적이 있다. 또 핵기술·연료 수출, 무기 수출 그리고 인도 원자로 시장 진출 등 다양한 포석이 깔려 있다.
그러나 비동맹회의 창설국 가운데 하나인 인도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란 계산은 처음부터 틀린 것이다. 인도는 러시아와 중국 등의 안보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군사훈련에 참관단을 보내고 있다. 이란과는 에너지 협력을 협의하고 있다. 세계 원자로 시장은 러시아와 프랑스가 훨씬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애슈턴 카터 하버드대 교수는 “이번 협정에서 얻을 수 있는 미국의 이득은 가상적인 것이고, 실현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협정이 발효되기 위해선 상원을 통과해야 한다. 하이드법 위반 부분 등의 논란 때문에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도는 국제원자력기구와 안전협정을 맺어야 하고, 핵물질·기술 거래를 통제하는 45개국 핵공급국그룹(NSG)과 협정을 맺어야 한다. 핵공급국그룹이 인도의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선 포괄적 핵안전협정을 수용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핵 관련 거래를 금지한 지침이 수정돼야 한다. 중국과 프랑스는 인도 한 나라의 예외를 인정하기보다는 기준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럴 경우 파키스탄과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유사한 거래가 인정될 수 있어 확산 위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번 합의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한 파키스탄과 이스라엘,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과 이란에게 시간이 지나면 용서받을 수도 있다는 나쁜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핵확산금지조약을 지켜온 많은 비핵국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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