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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31 10:33 수정 : 2005.03.31 10:33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화동권이대한독립의 혼을 체험하는 역사적 공간으로 확고히 자리잡게됐습니다." 박상기 주상해총영사는 31일 저장성 자싱시에서 '김구선생피난처'를 참관하고 `김구관조처(金九觀潮處)' 표지석 제막식에 참석한 뒤 한국인과상하이권의 새로운 관계를 이렇게 설정했다.

이에 따라 상하이시와 저장성 등 해당 지방정부와 함께 본격적으로 독립유적지관광벨트 조성에 착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막된 '김구관조처'는 김구선생이 독립투쟁을 하면서 고향을 그리며 지내던 곳에 서있다.

한중 양국의 주요 인사들은 대한독립의 상징, 김구 선생의 모습을형상화한 표지석이 들어서자 엄숙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특히 이 곳은 마오쩌둥이 과거 공산혁명을 하다 국민당군에 ?겨 피난하던 것을 기리는 '마오쩌둥 관조처'가 인근에 들어서 있어 흥미를 더했다.

저장성 정치협상회의 쉬훙다오 부주석은 "한중 양국의 혁명 발상지가바로 이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싱은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거이후 김구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이 피신했던 곳이다.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거이후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이 심해지자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옮겼으나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일제가 압박해오자 다시 자싱으로 몸을 숨겼다.

김구 선생은 어머니와 두아들, 그리고 이동녕, 김의한, 엄항섭 등과 함께 당시중국 국민당 간부 추푸청(저< 衣변에 者 >輔成) 선생의 고향인 자싱으로 숨어들었다.

당시 가명을 쓰고 은밀하게 독립활동을 펴던 김구선생과 한 중국여인의 순애보도 백범일지에 소개돼있기도 하다.

자싱시는 현재 김구선생의 당시 행적을 기리는 각종 기념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김구 선생 일행이 머물던 곳(梅灣街 소재)에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고 김구기념관을 세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상하이와 항저우에 이어 자싱은 확실한 대한독립 유적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현재 상하이 시내중심가인 루완구 마당로에 있는 임시정부청사는연간 25만명의 한국관광객이 방문하는 상하이의 명소가 됐다.

상하이 청사는 사용기간이 길고 (1926년 6월-1932년 4월) 보존상태가 양호해 우리정부에 의해 대표적인임시정부청사로 지정돼 1993년 4월13일 국내기업들의 지원으로 정식 복원된 뒤, 2001년 재복원됐다.

또 항저우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2년 5월부터 33년 12월까지 사무실로 활용했던 장성루 후볜춘(張生路 湖邊村) 23호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大韓民國 臨時政府 舊址)'라는 이름으로 복원시키고 있다.

여기에 자싱시가 김구기념관을 세우고 기념물을 대거 확충함에 따라 새로운 관광포인트로 부상한 것이다.

자싱시 여유국 페이리훙 부주임은 "김구 선생에 대한 한국인의 존경심을 잘 알고 있다"면서 "시정부는 김구 기념물을 역사적으로 잘 보존할 방침이니 만큼 한국인들도 보다 많이 찾아주면 더욱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구관조처' 제막식에는 우리측에서 관광업협회중앙회 소속 주요 여행사, 주상해총영사관 등 80여명이 참석했고, 중국측에서 저장성 여유사업국과 주요여행사 관계자등이 대거 참석했다.

(자싱/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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