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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6 22:56 수정 : 2007.09.16 22:59

화학무기 금지협약 가입국 현황

왜 아직도 ‘생화학무기’ 판치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이라크 전쟁 때 화학무기가 사용된 것을 비롯해, 지금도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빈 틈을 타고 약물을 무기화하는 연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약물을 전쟁 무기로 만드는 연구가 시작된 지도 벌써 40년이 지났다. 베트남 전쟁 때 구토를 일으키는 시에스(CS) 가스가 널리 사용됐다. 옛 소련은 ‘본파이어’라는 비밀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 호르몬의 무기화를 시도했다. 그동안 인간을 대상으로 수많은 군사용 약물들의 임상실험을 해 왔다. 정신활성 물질과 마비 물질, 그리고 심문용 약물 따위는 더는 전쟁무기 축에 끼지도 못할 지경이다.

이런 약물들은 적과 반체제 인사들에게만 사용되는 게 아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라크에서 병사들의 경계심을 향상시키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멀지 않아 공격성을 높이거나 공포와 고통, 피로에 대한 저항력을 증진시키는 약물을 들고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들을 보게 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병사들이 육체적 고통을 겪는 병사들보다 5배 이상이나 많고, 이 때문에 군대가 엄청난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약물의 무기화 연구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하지만 약물의 무기화에 대한 논쟁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나 하버드-서섹스 프로그램, 퍼그워시 회의 같은 비재래식 무기 전문기구들 안에서만 진행돼 왔다. 이런 연구가 대단히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유럽의회 산하 안보·방위정책·외교위원회는 안보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인간에 어떠한 형태로든 조작이 가능하게 하는 모든 무기의 개발과 확산을 세계적 차원에서 금지하는 국제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의지는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자취를 감췄다.

약물의 전쟁무기화 벌써 40년
9·11 뒤 ‘금지’ 목소리 사라져
2002년 ‘체첸 인질극 참사’ 초래


영국의학협회(BMA)는 최근 보고서에서 생화학무기금지협약이 있음에도 여러 정부들이 비치명적인 약물을 무기로 활용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협회는 전쟁 상황에서 상당수를 사망시키지 않고 장애만 유발시키는 비치명적인 약물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의사와 의료인들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의학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의학 지식을 사용하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우려는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참사’ 때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극장에 난입한 체첸 무장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신경가스를 살포했고, 이로 인해 인질 912명 가운데 130명 이상이 사망했다. 러시아 당국은 사망증명서를 조작했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끝내 공격 때 사용한 화학물질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체첸 테러리스트들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이 전원 사망했다. 이는 가스 사용이 법적 절차를 피하고 쉽게 독단적인 처형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생화학무기연구 감시단체인 ‘선샤인 프로젝트’는 미 공군이 최음제로 적군 병사들의 동성애를 유발해 규율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게이 폭탄’ 개발 계획을 추진하려 했다는 문서를 폭로한 바 있다. 만약 군국주의 국가에서 이런 종류의 약물을 사용하려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런 무기들이 ‘책임 있는’ 국가의 손 안에만 남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만큼, 이런 연구들을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97년에 발효된 화학무기금지협약은 이런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협정 2장 9조는 주사약에 의한 사형집행과 최루가스를 사용한 치안 유지 등, 몇 가지 경우에 한해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반테러 열풍이 불어 닥친 곳에서는 이런 예외 조항이 빌미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2008년 협약 평가와 개정에 착수하게 될 협상가들은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약물에 대한 연구를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실험실들이 새로운 약물 제조에 뛰어들 것이다.

국제규범 위반이 흔하게 일어나는 시기에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이 새로운 유형의 무기들의 집단적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특공대원들이 쇼크 상태에 빠진 군중들의 한가운데에서 재판도 거치지 않은 사형 집행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스티브 라이트/영국 리즈 메트로폴리탄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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