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04 18:38
수정 : 2007.10.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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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6세소녀 말라 옴스테드(Marla Olm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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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섯 살짜리 소녀가 자신의 그림을 팔아 20만 달러를 벌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었었다. 과연 여섯 살 짜리아이의 그림이 얼마나 훌륭할까라는 생각에 무심코 그 그림을 사진으로 봤는데, 내가 생각 했던 것 이상이었다. 어느 성인화가가 그렸다고 해도 뒤처지지 않을,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느꼈었던 무엇을 이끌어 내는 그러한 작품이었다. 이러한 놀라움은 곳 또 다른 궁금증을 만들게 했다. 과연 어떻게 해서 이 소녀가 이런 작품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신문에 혹자는 아마추어 화가인 아버지가 대신 그려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여기엔 조건이 하나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그 아버지의 그림 실력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다른 가능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아직 아이이며, 정형화된 미술수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이 조건은 아이의 천재성을 기본 전재조건으로 한다.
만약 이 아이가 정형화된 그림 수업을 받았다면 이 아이의 그림처럼 표현할 수 있을까? 물감을 아무렇게나 묻히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은 나쁜 행동이라 배웠을 것이기에 감히 이런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렸다는 그림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사람들이나 주위 환경을 조잡하게 표현하는 등의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의 그림은 그렇지 않다.
이 아이보고 정물화나 인물화를 그리라고 했다면 제대로 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물화등과 같은 그림은 전문교육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비구상작품은 인물화등과 같은 정교한 작업과는 다르다. 물론 비구상 작품 중에서도 세밀하고 섬세한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감성을 중요시한다. 비약적 설명인지 모르겠지만 비구상이란 작가의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무엇, 그래서 작가가 이것도 작품이냐고 동료 작가에게 물어볼 것 같은 무엇을 표현하는 분야가 바로 비구상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서 그 그림을 그린 것일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 자기가 그린 것이 비구상작품인지, 그림인지도 모르면서 그렸을 수도 있다.
필자는 생각한다.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그 재능이 교육의 효과로 가감되고 퇴색해져 예술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물론 앞서 말했지만 그 재능이란 인물화 등의 전문교육이 필요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그림뿐만이 아니다. 모든 예술에 동일하다.
반년이상 시를 배우고 있는데, 배우는 내내 고생했던 것이 과거 내가 알고 있던 시에서 벋어나는 것이다. 교과에서에서 배웠던 그러한 시들, 사랑을 읆조리는 시들, 영시 등등에서 벋어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여기에서 벋어나기 시작하니 이제 표현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내시에 작은 깃털 몇 개나마 달린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그림을 보며 느끼는 것이 많았다. 나의 사고를 어떻게 열어야 할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리고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등등. 여러 뒷걸음이 날 따른다.
이 아이가 어떻게 클지도 사뭇 궁금하다. 그렇고 그런 화가로 전락해 작품을 팔아선 입에 풀칠도 못할 수 있고, 폴록보다도 더 큰 화가로 성장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아이가 더 큰 화가로 성장하길 바란다. 또한 지금의 감성을 그대로 청년 장년기까지 이어가길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푼 희망과 문화적 감성을 더 많이 갖게 할 수 있도록.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작은 소망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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