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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7 18:05 수정 : 2005.04.07 18:05


부시·클린턴·라이스·김수환 추기경 등 참석
유서공개 “파킨슨병 탓 2000년 고뇌” 진퇴 고민

[7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날이 밝았다.

교황청은 8일 오전 10시(한국시간 8일 오후 5시)에 열리는 장례식 준비를 위해 6일 오후 10시부터 참배객 행렬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조시 부시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각국 조문단은 이날 잇따라 도착해 참배를 마친 뒤, 각각의 일정에 따라 장례식 때까지 조문 외교에 들어갔다.

교황청은 애도기간이 지난 뒤 오는 18일 콘클라베(추기경단의 교황선출 비밀회의)를 열 예정이다.

◇참배 제한=귀도 베르톨라소 이탈리아 시민보호청장은 “로마는 더 이상 참배객들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면서 “6일 밤 10시 이후 도착하는 사람들에는 교황 주검을 참배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이런 조처는 일반인의 교황 참배를 장례식 전날인 7일 오후까지 마쳐 8일 장례식을 원활히 치르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순례객들을 숙소가 마련된 대학과 시 외곽 텐트촌으로 안내하는 한편 장례식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해줄 것을 당부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6일 오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이 바티칸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마/연합


◇부시 대통령 참배=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바티칸에 도착한 직후 부인 로라 여사와 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함께 교황을 참배했다. 부시 대통령은 교황의 주검 앞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한 뒤, 옆에 서 있던 추기경들과 악수를 했다.


1969년 서임돼 최장 재임 기록을 갖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도 주교회의 의장인 최창무 대주교. 총무인 장익 주교 등과 함께 이날 로마에 도착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주검에 참배했다. 김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은 물론 북한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번 교황 장례식에는 전세계에서 4명의 국왕과 5명의 여왕, 70명 이상의 각국 정부 수반, 14명의 다른 종교 지도자와 200만명 이상의 신도들이 참석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질 전망이다.

◇교황 유언 공개=와병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천년을 맞는 2000년에 교황에서 물러날 것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이 7일 공개한 교황의 유언에 따르면, 교황은 2000년 당시 유언을 쓸 때 1981년 자신에 대한 암살기도사건에서 살아난 것을 ‘기적’이라고 언급하면서 파킨슨씨병 중세가 뚜렷해진 2000년은 명백한 고뇌의 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교황은 교황 즉위 다음해인 1979년부터 재위 26년에 걸쳐 폴란드어로 유서를 작성해왔으며 교황청은 이 유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했다.

교황은 유서에서 “그분(하느님)이 1978년 10월 16일 부여한 교황 직위를 어느 순간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깨우쳐주기를 원한다”며 교황으로 재직하는 동안 맡은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밝혔다. .

교황은 특히 조국인 폴란드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문제도 고려했으나 결국 장례 문제를 추기경단에 일임하기로 결정했다.

교황은 아무런 물질적 재산을 남기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자신의 사적인 모든 메모는 땅에 묻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교황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부터 2000년까지 작성한 유서를 7일 공개했다. 교황은 유서에서 2000년에 사임 가능성을 암시하고, 1981년 자신에 대한 암살시도 사건에서 하느님의 개입으로 살아 남았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폴란드어로 된 유서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했으며 로이터통신과 AFP통신이 이를 영어로 옮겼다.

다음은 유서 요지. △ "나는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순간을내 주님의 어머니(성모 마리아)의 손에 맡긴다"
△ "나는 처분할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않는다. 내가 필요로 하는 일상적인 물품들에 관한 한 나는 적절하게 보이는 대로 배치되길 바란다. 개인적인 메모는 매장돼야 한다" 교황은 오랫동안 개인 비서로 봉사해온 스타니슬라브 지위즈 대주교에게이같이 처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교황은 지위즈 대주교의 헌신에 대해 특별히 고마움을 표시한 뒤 "다른 모든 고마움은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내 가슴에 묻는다"고 말했다. (1979년)
△ "오늘, 모든 이들은 죽음의 가능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1979년 유언에) 덧붙인다. 또한 신과 구세주(예수), 신부 앞에 자신을 드러낼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1980년)
△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혼란스럽다.(가톨릭)교회의 삶은 어렵고 긴장감이 감돌기 조차 한다... 교회는 과거 수세기 동안의 내부박해가 아니라 (외부) 박해 시기에 놓여 있다. 참으로 오늘날의 박해는 무자비와 증오의 수위면에서 (과거 박해들을) 능가한다"(1980년)
△ "나는 전적으로 신의 손 안에 있음을 훨씬 더 많이 느끼고 있다. 또한 나 자신이 그(하느님)에게 나를 맡기면서 나는 계속 신의 뜻대로 계속 남아있다" (1982년)
△ "사후, 나는 미사와 기도를 바란다"(1990년)
△ "축제의 해인 2000년이 매일매일 지남에 따라 우리는 20세기를 뒤로 하고 21세기를 열고 있다. 신의 섭리에 따라 나는 과거로 옮겨가는 또다른 어려운 세기를살아가게 됐다"(2000년)
△ "성베드로 광장 군중사이에서 암살시도가 있었던 1981년 5월 13일 나는 신의섭리로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삶과 죽음의 유일한 지배자인 그(하느님)는 나의삶을 연장했고 어떤 면에서 나에게 새로운 인생이란 선물을 주었다. 이 순간부터 나의 삶은 훨씬 더 많이 그(하느님)에게 속하게 됐다. 나는 1978년 10월 16일 그(하느님)로부터 부여받은 소임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그의 도움을바란다"(2000년)
△ "하느님의 섭리여 찬양받으소서. 이른바 냉전이 전세계에서 엄청난 위험으로간주되는 폭력적인 핵갈등 없이 끝났나이다"(2000년)
△ "모든 이들에게 나는 단 한가지를 말하고 싶다.'하느님 이들에게 상을 내리소서'"
(2000년) △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말한 이 말을 라틴어로 적어 교황은 유서를 마무리했다.(2000년)
△ "나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신이 그(하느님)의 종에게 내릴 수 있는 어떠한의무, 시험, 고통에도 맞설 수 있는 영광을 그(하느님)의 뜻을 통해 나에게 주시리라는 가장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날짜 없음) (바티칸시티 로이터ㆍ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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