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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12 18:47 수정 : 2007.11.12 18:47

해외에 망명중이던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는 최근 미국의 중재 하에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과 권력분점 협상을 하던 중 갑자기 터진 무샤라프의 비상사태 선언으로 가택연금 당하는 등 진퇴양난에 처해있다. 부토의 현 처지는 파키스탄에 놓고 딜렘마에 빠진 미국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지난 10일 가택연금 당한 뒤 지지지들과 함께 항의하는 부토.

파키스탄이 연일 국제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최근 파키스탄 사태는 이라크전 이후 국제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이프티카르 초우더리 대법원장 해임을 둘러싼 일련의 반정부 시위사태→100여명이 사망한 랄마스지드(붉은 사원) 유혈 무력진압 사태→무샤라프와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권력분점 협상→망명했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귀국과 귀국행사 도중 대형 테러→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무샤라프의 비상사태 선포에 이르기까지 벌어졌던 파키스탄의 상황이다. 제3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군부독재에 대항해 일련의 반정부 시위가 고조되고, 쫓겨났던 전임 국가 원수가 귀국하고, 또 참다못한 군정쪽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과거 필리핀 등에서 많이 보던 장면들이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최근 상황은 미국 등 서방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게 단순한 ‘제3세계형 정정불안’이 아니다. 그 결과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래 국제정세를 규정짓는 ‘테러와의 전쟁’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최근 미국이 부토와 무샤라프의 권력분점 협상을 주선하는 등 왜 그렇게 애면글면하며 파키스탄 사태에 개입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돈 벨트. 그는 최근 들어 파키스탄 북서변경지대를 취재한 드문 서방 언론인이다.
미국 <내셔녈 지오그래픽>의 선임 에디터인 돈 벨트는 지난 6~7월 파키스탄을 6주간 돌아다니며, 서북부 변경지대도 취재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와지리스탄, 특히 북서부 와지리스탄 산악지대였다. 그는 이 취재로 미국 공영방송 <피비에스>(PBS)의 간판 뉴스프로인 <뉴스아워>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달나라를 단독취재한 것도 아닌데 글로벌 시대에 파키스탄이라는 익숙한 나라의 취재기를 들려줬다. 더구나 <피비에스>라는 미국의 권위있는 언론사가 직접 취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언론사 기자를 불러내는 이례적 조처를 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한 이 글로벌 시대에 최근들어 이 지역에 들어간 서방 언론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북서부 산악지대 와지리스탄은 지금 세계에서 중앙 당국의 공권력이 가장 미치지는 못하는 지역이다. 그도 단독으로 이 지역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파키스탄군이 잠시 이 지역을 들어갔을 때 보호를 받으며 따라 들어갔다.

아프간 접경 부족지역(Tribal areas)은 법적으로도 현재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다닌다. 법으로도 총기 소지는 허가됐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남자들이 아무리 가난해도 총은 들고 다닌다…부족 지역에서는 지난해 9월 협정이 있었는데, 본질적으로 파키스탄 정부는 친탈레반 세력에게 통제권을 이양했다. 특히 최근 모든 문제들의 일어나는 북부와 남부 와지리스탄 지역에서 그렇다. 그들은 이 지역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다. 내가 또 발견한 것은 이 부족지역 바깥에서, 즉 북서 변경지역이 아닌 지역에서는 파키스탄이 급속히 탈레반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와 이발소, 사업체가 밤이면 통제권을 장악하는 탈레반 세력들에 의해 테러공격을 받는다. 이발소 문 앞에는 ‘턱수염 면도를 그만두지 않으면 살해될 것이다’라는 쪽지가 붙는다. 비디오 가게는 방화되고, 여학교는 공격의 표적이 된다. 즉 이 부족 지역에서부터 (탈레반화)가 확산돼,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으로 침투해 가는 형국이다.”(관련기사 http://www.pbs.org/newshour/bb/asia/july-dec07/pakistan_08-02.html)

그가 전하는 상황은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슬람주의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심각함이고, 이 이슬람주의화가 파키스탄이란 나라에서 갖는 의미이다. 파키스탄의 이슬람주의 세력의 득세는 다른 이슬람권 국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파키스탄은 사실상 이슬람권 국가 중 최대 국가라 할 수 있다. 인구로 보면 2억2천만명의 인도네시아가 최대 국가라 할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은 사회를 완전히 장악한 지배적 규범이라 하기 힘들다. 쉽게 얘기해 세속화된 이슬람 국가이며, 이슬람이 그저 종교로서 기능할 뿐이다. 이에 비해 파키스탄은 다르다. 이슬람은 종교를 넘어 사회를 장악한 지배적 규범이다. 파키스탄은 인구 1억6천만명인데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월등한 국력을 가지고 있다. 석유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중동권의 다른 이슬람권 국가에 비해 파키스탄은 강대국 인도와 맞서는 과정에서 강력한 군을 가지고 있다. 군 병력이 92만명으로 거의 100만대군에 육박한다. 예비군 53만명까지 있다.

둘째, 무엇보다도 파키스탄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 중 유일한 핵보유국이다. 핵무기의 분실·탈취·폭발·핵물질 유출 등을 뜻하는 미 국방부의 용어인 ‘브로큰 애로’(부러진 화살)가 파키스탄에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최근 파키스탄 핵무기의 안정성에 관한 보고를 받은 하원 군사위의 엘런 토셔 의원은 8일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가 파키스탄 핵무기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쥐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누가 풋볼(핵무기)을 갖고 있고, 다음에 누가 차지할 것인지”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도 “파키스탄이 ‘실패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아주 현실적”이라며 사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수십기로 추정되는 파키스탄의 핵무기는 여섯 군데로 나뉘어 보관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교적 소형이라 탈취나 운반이 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핵무기 개발에 깊이 간여한 파키스탄 정보부가 탈레반과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파키스탄은 (리비아와 북한에) 핵무기 설계와 원심분리기를 유출했던 나라”라며 “파키스탄 과학자 두 명이 2001년 (오사마) 빈라덴한테 핵무기 만드는 법을 얘기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핵무기 입수를 주장했다고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파키스탄 ‘브로큰 애로’ 위험에 미 긴장"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249114.html)

세째, 핵 보유에서 알수 있듯이 파키스탄의 과학기술 수준은 만만치않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600달러로 중동의 산유국 이슬람권에 비해 적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국민 다수는 사실 유목민 사회단계를 지금 겨우 벗어나는데 비해, 파키스탄의 인적자원과 과학기술 수준은 분야에 따라서는 서방 수준이다.

파키스탄은 세계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역인 걸프 지역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상실되면, 아프간도 무너지고, 이 경우 걸프 지역 입구와 북쪽은 완전히 서방의 통제에서 벗어난다. 새로운 석유 보고로 떠오른 카스피해 인근 중앙아시아 지역의 접근로와 통제권도 서방은 상실하게 된다.
네째,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다. 지도를 보면 파키스탄은 세계 제1의 전략적 요충지인 걸프 지역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서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이란이다. 파키스탄이 이슬람주의화되는 등 서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 등 서방의 걸프 지역에 대한 전략적 통제성은 일순간 위협받게 된다. 현재 진행중인 테러와의 전쟁의 지정학적 상황도 급변한다. 앞서 언급한데로 파키스탄과 접경한 아프간에서의 탈레반 및 알카에다 소탕작전은 사실상 종을 치게 된다. 현재 미국이 강력히 후원하는 상황에서도 무샤라프 군사정권은 북서변경주에 대한 통제권 확보에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 서방의 입장에서 ‘실패한 국가’로 될 경우, 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벨트가 일거에 서방의 영향력에 벗어나게 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도 위험하게 된다. 최근 석유자원의 보고로 떠오른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정학적 위험도 가중된다. 이란-아프간-파키스탄이 벨트가 상실되면, 미국 등 서방으로서는 중앙아시아에 접근할 통로가 사라진다. 동쪽으로는 중국이, 북쪽으로는 러시아가 버티고 있다. 옛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군사기지까지 설치했으나, 최근 이들 국가들의 정정불안과 탈서방화,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 등 지역차원의 협력은 미국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관련기사 ‘미, 중앙아시아-중동 군사벨트 흔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243774.html

‘미-중, 아시아 패권 놓고 ‘동맹경쟁’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243774.html)

최근 중앙아시아에서 흔들리는 미군기지들.

한마디로 파키스탄의 상실은 미국 등 서방에게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시나리오의 현실화가 된다. 중동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통제력이 일순간에 흔들리는 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고의 전략적 자원인 석유의 보고(중동과 중앙아시아)가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지난 7년간 무샤라프의 쿠데 타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에 눈물겨울 정도의 노력을 들였다.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무샤라프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하자, 조지 부시 당시 공화당 후보는 이에 질문을 받고 “그가 취임했으니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의 비민주 적, 비합법적 쿠데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말 실수이기는 하나, 미국의 집권 세력이 마음 속에 품은 파키스 탄에 대한 일단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부시 정권은 무샤라프 정권에 대해 9·11동시테러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 쟁’에 대한 동참의 대가로 그동안 100억달러나 지원했다. 이는 공식적인 지원이고, 은밀한 지원까지 합치면 그 수치는 적어도 50 억달러는 더 추가될 것이란 추산도 있다. 또 국제금융기구들로 하여금 파키스탄의 부채를 경감시켜, 지난 4년동안 연 6%의 경제성장 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줬다. 특히 지난 90년 파키스탄의 핵 실험 이후 제재조치였던 무기금수를 해제해, F-16 전투기 36 대 판매를 승인했다. 2005년 부시 행정부는 파키스탄을 ‘주요한 비 나토 동맹국’이라고 이례적으로 호칭했다. 한마디로 나토 회원 국, 즉 유럽의 동맹국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한 것이다.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이런 파격적 조처에도 불구하고 파 키스탄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특히 무기판매나 원조의 과실을 대부분 받아먹은 파키스탄 군부마저 미국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 하며, 지난 7년간 ‘테러와의 전쟁’에 건성으로 참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기간 동안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지원과 수혜를 받은 파키스탄이 여전히 정정이 불안하고, 반정부세력뿐만 아니라 집권세력마저 미국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현재 벌어지는 테러와의 전쟁의 뿌리인 지난 70년대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이다. 파키스탄은 사실 이미 30여년 전부터 현재 이슬람권을 휩쓸고 있는 이슬람주의 배후지라고 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 군부를 포 함한 모든 세력은 지난 30여년 동안 아프간 전쟁을 무대로, 그리고 파키스탄을 배후로 한 이슬람주의 세력과 깊은 뿌리를 갖고 있 다. 그리고 그 뿌리는 사실 미국이 키워준 것이다. (파키스탄의 현 상황을 낳은 배경에 관한 글은 곧 올리겠습니다)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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