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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0 21:06 수정 : 2005.04.10 21:06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다. 이스탄불의 유럽 쪽 시가지 중심가인 이스티크랄 거리에서는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스탄불/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중동 다시 깊이보기

1. 아라파트 이후의 팔레스타인
2. 석유와 내전-수단의 명담
3. 이슬람주의 마지막 불꽃, 알제리
4. 중동의 관광대국 꿈꾸는 튀니지
5. 리비아, 투항인가 변신인가
6. 모로코의 정치개혁 실험
7. 중동평화와 이집트의 선택
8. 이슬람주의 산실, 알아즈하르 대학
9. 유헙행 둘러싼 터키의 고뇌
10. 좌담

2005년 10월부터 유럽연합 가입 공식 협상
이슬람당 집권에도 사형폐지 등 개혁
기독교와 상생땐 중동평화 길 열수도

2004년 12월17일, 터키에서는 함성과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날 유럽의회는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공식 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0여년 간 유럽연합의 문을 계속 두드려왔던 터키에 집 주인이 드디어 응답한 것이다. 협상을 시작할 날짜는 2005년 10월3일로 잡혔다. 그 때부터 유럽연합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 터키의 회원 가입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상이 시작된다.

지금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문제로 온나라가 들끓고 있다. 국민의 99%가 이슬람을 믿고 있는 터키가 과연 기독교 문화에 뿌리를 둔 유럽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일까?

“유럽연합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31개항의 요구조건 협상과정에서 터키는 62번의 거부권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견한 터키 이슥대학교 총장 이르신 칼라이지오울루의 지적처럼 터키의 유럽행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단순히 경제·정치적 개혁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안보나 민족적 자존심, 나아가 종교적 가치와 관련된 문제들까지 협상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첫째 장애물은 키프로스 문제다. 1974년 터키 군대가 그리스의 터키인 차별정책을 비난하며 키프로스 섬을 침공해 북쪽 터키인 거주지역을 북키포로스터키공화국으로 독립시켜버렸다. 터키군의 철수와 영토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그리스계 키프로스는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 터키의 가입에 거부권을 던질 것이다.


둘째는 아르메니아인 학살문제다.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 오스만제국의 시민으로 살아가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연계해 터키를 공격했다가 학살당하거나 도망치다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터키와 아르메니아 모두 상당한 인명손실을 입었지만, 아르메니아는 150만명 이상이 학살됐다고 주장하며 터키 정부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셋째는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문제다. 중동에는 약 2200만명 정도의 쿠르드인들이 터키,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공화국 등에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으며, 그중 가장 많은 1천만명 이상이 터키에 있다. 그동안 쿠르드족은 철저한 터키화 동화정책에 희생당하면서 민족적 존재를 부정당해 왔다. 자치와 독립을 위한 운동은 물론 자신들의 말과 글 사용도 철저히 탄압받았다. 쿠르드 분리주의자들은 쿠르드노동당(PKK)을 중심으로 터키에 대항에 끈질긴 투쟁을 벌여왔으며, 그 결과 1990년 이후 터키 군경과 민간인도 3만명 넘게 희생됐다. 이러한 무장투쟁은 1999년 쿠르드노동당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이 체포됨으로써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이라크전 이후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쿠르드 자치확대와 독립이 논의되고 유럽이 계속 터키 정부의 쿠르드족 탄압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주요한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다.

넷째는 이슬람 가치와 유럽연합 기준의 갈등이다. 올해 2월에 열린 이슬람 최대 축제인 희생제 행사 때도 유럽연합은 무슬림들의 양 잡는 의식이 비위생적이고 동물학대라고 문제삼았다. 이밖에도 여성들이 쓰는 차도르와 근친결혼 등 종교, 문화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올 3월 터키 통계청의 여론조사에서 터키 국민의 70%가 유럽연합 가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10여년 전의 부정적 인식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따지고 보면 터키는 이미 유럽의 일원으로 익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함께 추축국을 형성해 영국,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다 오스만제국이 결정적으로 패망한 뒤 터키는 서구와의 상호협력을 생존전략으로 삼아왔다.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해 실질적인 유럽안보협력체제의 핵심이 되었고, 1995년부터 유럽의 관세 혜택을 받으면서 터키 경제의 무게중심은 이미 유럽으로 넘어가 있다. 올림픽에도 유럽팀으로 출전하고, 월드컵 예선에서도 유럽팀들과 조 편성을 한다.

유럽 지도자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터키 없는 유럽은 생각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외친다. 터키는 중동 이슬람권의 중심국가 중 하나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6개 투르크계 공화국의 ‘맏형’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유럽안보에 결정적인 열쇠를 터키가 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세 이후 수백년간 오스만제국의 위협을 체험한 유럽으로서는 터키를 적대적 관계로 바깥에 두는 것보다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여 상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물론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도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터키의 가입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그 중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많은 프랑스와 역사적 응어리가 깊은 그리스가 가장 강하게 반대한다.

아무튼 지금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첫 발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바로 이슬람의 가치를 내세운 집권 정의발전당(AKP)이란 점도 전망을 밝게 해주는 청신호다. 전통적으로 이슬람 당은 유럽연합 가입에 강하게 반대하며 중동 이슬람권과 연대해 아시아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세속주의를 헌법정신의 기본으로 하는 터키에서 이슬람 당이 단독집권한 것도 공화국 역사상 처음인데, 이들은 강력한 유럽지향정책을 표방함으로써 유럽에서 신뢰를 얻고 이슬람에 대한 불신감을 씻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 움직임을 계기로 터키 사회도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사형제도를 전격 폐지하고 이슬람권에서는 최초로 간통제를 폐지하는 결단을 내렸다. 아직도 남녀 간에 서로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관행에 비추어 간통제 폐지는 거의 혁명적 변화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과감한 경제개혁과 부정부패 타파로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거의 연간 100%에 달하는 만성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온 터키 경제는 2003년 인플레이션이 18%대로 떨어졌고, 2004년에는 8%대를 기록했다.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8%를 유지하고 있으며 300억달러 규모의 외국인 투자가 유입돼 경제가 안정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이에 힘입어 올해 1월1일부터는 화폐개혁을 단행해 100만리라를 1리라로 바꾸는 조처를 단행했다.

유럽 노동시장 개방도 터키 국민들이 기대하는 부분이다. 인구 7천만의 터키에 유럽은 취업을 위한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점은 유럽이 가장 불편해 하는 걱정거리이기도 하기 때문이 터키인들의 유럽 노동시장 접근에 제한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터키 국민들의 불안감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무슬림으로 살아온 우리가 기독교 문화와 잘 융합할 수 있을까?” “지금도 물가가 치솟는데, 유럽 수준의 삶이 강요되면서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민족적 자존심과 국가 이익을 양보하고 껍데기만 뒤집어 쓴 유럽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다.

터키가 유럽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고 관계가 나쁜 주변국들과 얽혀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과 인내, 양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기간이 10년이 걸리더라도 터키는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기로 이미 결심을 굳혔다. 만약 유럽 입성에 실패하더라도 터키는 그 과정을 통해 국가전반의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공감대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유일한 나라다. 동서문명의 교차로에서 긴 역사를 통해 나와 생각과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경험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터키가 유럽의 일원이 되는 날, 인류사회는 이슬람과 기독교라는 두 문명의 통합과 공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통해 중동 분쟁 종식은 물론 함께 사는 지혜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얻게 될 것이다.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차도르’ 해금되나

정부서 금지…8만여명 대학 제적
유럽연합 가입땐 차별 사라질듯

▲ 국민의 99%가 이슬람 신자이지만 엄격한 세속주의를 지켜온 터키 정부는 차도르 착용을 규제해 왔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종교적 상징으로 차도르를 쓰고 있다.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31살의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인 파티마는 아픈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2000년 6월 차도르를 쓰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제적당한 후 아직도 학업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이슬람의 가치가 훼손당하거나 종교에 뿌리를 둔 터키 문화의 정체성이 약화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파티마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오히려 자신과 같은 무슬림 여성들이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거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유럽국가들이 차도르 착용을 허용하고 있고,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도 무슬림의 음식과 관습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터키는 지구상에서 이슬람 가치가 가장 억압받는 나라들 중 하나”라고 말한다. 종교적 권장사항인 차도르를 쓰면 학교에 갈 수도 없고, 공공기관에 취직도 할 수 없다. 최근 5년 동안 차도르 때문에 대학을 떠나야 했던 학생들의 숫자는 8만명, 교사와 교수는 5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슬람사원의 이맘도 관제화돼 국가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국가의 잘못된 종교정책에 대한 비판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물론 터키가 근대화 개혁을 하면서 중세의 가치에 빠져 있는 낡은 종교성을 타파하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혁명적 쾌거였다. 그 뒤 무책임한 이슬람 정치집단들이 종교를 정치화하여 차도르를 근대적 세속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의 상징으로 몰고 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세족주의를 신봉하는 군부와 공화인민당 정권에서는 차도르를 터키 헌법정신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도전으로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터키의 유럽연합행을 주도하는 집권세력이 바로 이슬람당 출신들이고 이슬람에 바탕을 둔 정치집단들이다.

이제 터키인들의 의식수준도 향상되어 차도르를 정치적 이슈로 보기보다는 단순한 종교적 가치로 보자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차도르 문제 등으로 2000년 6월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던 67만7천여명의 복적을 추진하는 대사면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어떤 면에서 유럽연합 가입은 터키인에게 더 자유로운 종교적 삶을 보장해주고, “차도르를 쓰고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자신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파티마의 꿈이 실현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글·사진 이희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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