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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9 11:19 수정 : 2008.02.29 11:19

지난 20일 카라치 <선티비>의 총선특집 토론프로그램 녹화현장. 출연자는 (왼쪽부터) 아주시보의 살림 샤자드 파키스탄 지국장, 파키스탄관광청 출신 프리랜서 탈라트 라힘, 그리고 한겨레 김외현 기자였다. 이는 한겨레 기자로선, 사상 최초의 외국 토론 프로그램 출연인 것으로 알려졌다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세번째 생일을 두달 앞둔 조카 유정이가 얼마전 어린이집에서 새 노래를 배워왔다. 정말 장수하는 노래다. 양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시작하는 율동은 나도 소싯적에 배웠다.

나에게도 "정말 좋겠네" 할 일이 생겼다. 그것도 머나먼 파키스탄에서. 총선 취재에 나섰던 파키스탄 출장기간 동안, 현지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했다. 지난 22일 오후 9시30분 현지 <선티비>(Sun TV)에서 방송한 2008 총선 특집 토론이었다.

취재를 하러 왔는데, 취재를 당해서야…하지만 호기심…!

살림 샤자드 아주시보(亞洲時報·Asia Times Online) 파키스탄 지국장의 제안이 계기였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테러전쟁 및 국제정치 전문가인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는데, 며칠 뒤 대뜸 나에게 출연을 제안한 것이다. 한 방송국에서 이번 총선을 지켜본 외국인 '옵저버'를 섭외중이라고 했다. 자신도 패널로 함께 출연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취재를 하러 왔는데, 취재를 당해서야 되겠냐"는 기자적 자존심에 잠깐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속으로는 "정말 좋겠네♬"를 불렀다.


사회자, 첫 질문을 나에게 던지다…

기사 송고를 끝낸 뒤 20일 오후,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고 털래털래 발길을 옮겼다. 파키스탄 경제 중심지로 불리는 카라치 춘드리가르로 사이마타워 19층 꼭대기에 위치해있는 선티비 방송국이었다.

녹화에 앞서 프로그램 진행자인 일간 <새벽> 와히드 칼프 편집장에게 '한겨레'와 '김외현'의 발음을 가르쳐야 했다. 쉽지 않은 발음이었을텐데, 제대로 발음했다. 고마웠다. 조명 각도 조정이 끝나고, 패널들의 분자이 마치자 녹화가 시작됐다. 프로그램은 영어로 진행됐다. 영어는 파키스탄 공용어다. 그의 첫 질문은 "김외현 기자는 이번 선거를 어떻게 봤습니까"였다.

김외현: 선거 직전까지 사회 전반에 팽배했던 부정선거 논란의 규모에 비하면, 선거는 큰 무리없이 끝났다고 본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소가 통째로 폭파되고, 투표용지가 바깥으로 유출되는 등 혼란이 있었다. 보수적인 시골에서 여성의 투표를 막으려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다만 야당이 압승을 거두고, 참패한 현 여당이 패배를 인정했다는 데에서 '큰 무리 없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파키스탄 국민들이 무사히 선거를 끝낸 것을 축하하고, 동시에 파키스탄 민주화를 바라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피부색이 다른 내 얼굴을 분장하던 분장사는 매우 즐거운 양 보였다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파키스탄 간다더니 주변에서 모두 말렸지만…

한국에서도 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선, 외국인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를 궁금해 한다. 마찬가지로 패널들은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파키스탄의 모습을 궁금해 했다. 칼프 편집장이 물었다. "외국 언론들은 파키스탄에서 일어나는 폭탄테러, 탈레반 소탕작전을 주로 보도합니다. 여기로 온다고 할 때,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김외현: 말렸다. 가족, 친구들 모두 걱정이 크다. 지금도 전화만 하면 언제 오냐고 먼저 묻는다. 최근 들어 파키스탄에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혼란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외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일은 기사로 쓰기 쉽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은 기사로 쓰기 힘들다. 어느곳이든 기사화되는 일보다 기사화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결국 혼란보다는 평화가 일상에 가까운 셈이다. 그렇게 믿으면서 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자살폭탄 등 테러 탓에 일상 속에 공포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은 안타깝다. 북서쪽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대의 혼란도 염려스럽다. 주한파키스탄대사관에 근무했던 한 파키스탄 외교관은, 대사관 웹사이트에 그쪽 지역 스와트밸리**의 풍광을 자랑하는 글(참고)을 남겼다. 나도 그곳에 느긋한 마음으로 자전거 하이킹이라도 가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안타깝다.

**스와트밸리에선 지난 반년가량, 친탈레반 성향 무장세력의 점령 시도와 정부군의 토벌 작전 사이에서, 밀고 밀리는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브라힘 춘드리가르 파키스탄 전 총리의 이름을 딴 춘드리가르로(I.I.Chundrigar Road)는 파키스탄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경제중심지다. 하비브은행, 시티은행, 파키스탄은행 등 은행과 스테이트라이프, 뉴주빌리 등 보험사, 카라치증권거래소(KSE)와 면화거래소 그리고 유력 일간지 더뉴스와 지오(Geo)티비 등 언론사들이 밀집해 있다. (사진출처:인터넷)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정치 안정과 예측가능성이 독재정권의 핑계여선 안 돼…

파키스탄도 경제 발전에 대한 꿈과 의욕은 드높다. 이웃한 형제나라 인도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은 인도 독립 당시, 이슬람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슬림들이 모여 따로 세운 나라다. 영국 식민지의 뿌리를 함께 한 셈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인도는 제대로 된 지하자원 없이도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키스탄은 풍부한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을 갖고도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칼프 편집장이 물었다.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파키스탄이 해야 할 일은 뭐가 있을까요?"

김외현: 투자 유치, 경제 개발 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치적 안정과 예측가능성이다. 투자자들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다. 파키스탄도 이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정치 안정과 예측가능성이 독재정권의 집권 이유가 돼선 안 된다. 세계 많은 독재자들은 이를 내세워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시켜왔다.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도 있지만, 독재정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무너진다. 장기적으로 볼 때, 어떤 나라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독재정권 축출과 투명성 확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그 나라 국민의 몫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도울 것이다. 그럼 다시 묻자. 파키스탄은 독재국가인가? 파키스탄 민주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은 뭐가 있을까?

토론이 끝나고 난 뒤 느낀 책임감

파키스탄 TV 방송에 출연하다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국제사회의 과제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제는 새로 선출된 의회와 정치인들에게 맡겨볼 때라는 데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졌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적 진전이란 의미에서 이번 선거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토론이 오고갔다. 1시간 가량 진행된 녹화가 끝났다. 영어로 이야기하면서 나는 틀린 단어를 쓰기도 했고, 한참 말을 더듬기도 했다. 나는 "알아서 편집하겠지"라며 그 모든 실수의 기억을 떨쳤다. 방송국을 나서 함께 했던 패널들과 식사를 한 뒤, 호텔로 발길을 옮겼다.

대규모 메이저 방송은 아니지만, 방송이 나간 뒤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생겼다. 머무는 기간동안 숙소와 자주 가는 식당에선 사람들이 특별한 인사를 건네왔다. 인터뷰 등으로 이미 만났던 사람들은 "방송에서 봤다"며 다시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 뒤 취재를 진행하면서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말하자 사뭇 태도가 달라졌다. 우쭐했다.

내겐 오히려 책임감이 생겼다.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기나긴 군사정권의 철권통치 속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증만 키워가는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변함없는 지지를 약속하며,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싶었다. 이 책임감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지고 가야 할 장기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답은 민주주의야

카라치에 머물던 중 만났던 한 노교수는 정치권력에서 물러나지 않는 파키스탄 군부와 부패한 봉건적 족벌 정치인들을 한탄하며, 한국을 비교했다.

그는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의 중요성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한국도 파키스탄처럼 친미 군사정권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두 나라를 비교해보라. 한국의 정치·경제 발전은 놀랍지 않은가"라며 감탄했다.

동석했던 내 또래의 현지 기자가 물었다. "김기자, 한국은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한거지?" 나는 답했다. "결국 답은 민주주의였던 것 같아."

※바쁜 와중에 함께 녹화장에 찾아와서 사진까지 찍어준, 현지 일간 데일리타임스 경제부의 모하메드 야세르 기자에게 감사드린다.

파키스탄 TV 방송에 출연하다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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