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03 21:19
수정 : 2008.03.03 21:21
미군 역대 구매 2~3위 규모…미 정가·보잉쪽 허탈·분노
독·프 “유럽 항공산업의 승리” 자축…미대선 쟁점 가능성
미국 공군의 최대 역점사업인 공중급유기 교체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이 수주하는 이변이 일어나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파문을 낳고 있다.
50년 가까이 된 공중급유기들을 대거 교체할 예정인 미 공군은 미국의 보잉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노스럽그루먼 컨소시엄을 놓고 저울질해왔다. 납기와 탱커 용량, 가격 등을 따진 미 공군은 에어버스 모회사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에 179대를 주문키로 했다고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발주액은 400억달러(약 37조9천억원)다.
미국과 유럽에선 동시에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 업체들한테 배타적 사업권을 주던 미 국방부는 최근 유럽제 헬리콥터를 사는 등 구매처를 다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구매력이 크다는 국방부가 초대형 사업에서 외국 업체의 손을 들어주리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번 사업은 미군 구매사업 사상 2~3위에 이른다. 1천억달러 규모인 공중급유기 교체 사업 전체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이 독식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 회사의 대주주인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미 공군 발표를 크게 반겼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에어버스와 유럽 항공산업의 엄청난 승리”라고 말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가장 까다로운 군수시장”인 미국에서의 쾌거를 축하했다.
반면, 보잉과 워싱턴 정가는 충격과 허탈감에 빠졌다. 보잉은 “아주 실망스럽다”며 심사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케이 허치슨 상원의원(공화)은 보잉의 선정을 확신한 나머지 축하 보도자료를 성급하게 뿌리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결과를 예상 못한 보잉의 자축행사에 갔던 놈 딕스 하원의원(민주)은 “어떻게 경기침체 와중에 에어버스에 사업권을 주냐”며 격분했다.
렉싱턴연구소의 로렌 톰슨은 “충격 정도가 지진 수준”이라는 말로 보잉의 탈락이 얼마나 뜻밖인가를 표현했다. 에어버스330에 부착하는 급유장치를 댈 미국 업체 노스럽그루먼은, 에어버스가 조립 등을 미국에서 하기 때문에 일자리 2만5천개가 생긴다고 주장하며, 역풍 방지에 나섰다. 미 공군은 “새 급유기는 꼬리날개에 성조기를 달고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며, 국수주의적 반응을 경계했다.
예산을 심사할 의회 쪽 기류가 심상치 않아 논란이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로이터〉 통신은 2일 이번 계약이 대선 이슈가 되고, 특히 공화당의 선두주자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매케인은 2001년 급유기 리스계약 과정에서 공군 고위인사가 일자리 마련을 대가로 보잉을 봐준 스캔들의 조사를 주도했다. 그는 2006년 미 행정부가 에어버스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일이 급유기 입찰에 영향을 줘선 안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딕슨 민주당 의원은 “매케인은 분명히 에어버스 편이었다”며 이를 쟁점화할 뜻을 내비쳤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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