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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에 선출되기 전인 지난 13일 추기경단 단장으로 외교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성염 교황청 한국 대사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라칭거 추기경은 성염 대사에게 한국 정부가 이해찬 총리를 조문사절로 파견한 데 대해 사의를 표시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제공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회참여 온도’ 낮아질까 우려도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등장에 한국 가톨릭은 축하하는 분위기다. 교인들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으로 인한 ‘교황 유고’의 불안감이 종식됨에 따라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인 최창무 대주교는 “세계 평화를 열망하는 온 인류의 희망과 기대가 이제 새교황님께로 고스란히 옮겨졌다”고 말했다. 한국 가톨릭의 최대 관심은 교황이 ‘얼마나 이 땅에 관심을 갖고, 배려하느냐’다. 우선 선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2차례 방문하고 북한 지원에 큰 관심을 쏟은 것과 달리, 새 교황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고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징표도 현재로선 없다. 보수신앙 고수…인권·여성등 ‘눈길’ 덜 줄수도
추기경 추가 임명·대북지원 태도 어떨까 관심 남미에서 독재에 저항한 해방신학을 공산주의에 물든 사상으로 보고 징계한 새 교황이 북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도 미지수다.
새 교황 취임 뒤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있는 현안은 그가 한국에 추기경을 추가로 임명할지 여부이다. 한국의 추기경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서임된 김수환(83) 추기경 한 명뿐이다. 김 추기경은 오래 전 정년(75살)을 넘겨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추기경 비밀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 가톨릭 신자는 1969년 80만명에서 2003년 443만명으로 5배 이상 늘어나 세계 가톨릭계에서 ‘경이적인 성장 국가’로 주목받고 있지만, 교황청에선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한 셈이다. 가톨릭 인구가 100만여명으로 우리 나라의 4분의 1에 불과한 일본에선 시라야나기 세이치 추기경과 하마오 후미오 추기경 두 명이나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한국에 새 추기경을 서임해 줄 것을 여러차례 건의했으나 선대 교황은 이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선종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안팎에선 이미 새 추기경 후보가 3배수로 바티칸에 올라가 있다는 설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변혁의 한국 현대사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만큼 새 추기경이 임명되는지 여부는 가톨릭계를 넘어 사회적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자유보다는 순명을 미덕시하는 가톨릭에서 새 교황 선출 뒤 비판적 의견이 등장하긴 쉽지 않은 분위기이지만, 우리나라 네티즌들 사이엔 적잖게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보수파 교황으로 인해 한국 가톨릭이 인권과 여성, 낙태 등의 사회적 논의의 장을 닫아버리고 더욱 경직되어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다. 평신도 단체인 우리신학연구소 박영재 소장은 “새 교황은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보수적 신앙을 고수하는 데 더욱 관심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해온 한국 가톨릭이 이런 새 교황의 성향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도 관심사다. 아울러 새 교황은 종교 다원주의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종교간 교류의 윤활유 역할을 해온 한국 가톨릭을 배타적으로 바꿔놓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명동성당은 20일 새벽 1시 ‘축하의 종’을 울린 데 이어 오전 6시30분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의 집전으로 감사와 축하 미사를 드렸다. 한국 가톨릭은 25일 오후 6시 주교단 공동집전으로 명동성당에서 교황 즉위 경축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축복’ 뜻…“평화중재자 인상주려” 분석 ■ 왜 ‘베네딕토’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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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회개와 쇄신 강조 ‘현대교회의 혁명’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일 첫 미사에서 실천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은 뭘까?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개혁을 주창한 교황 요한 23세의 소집 명령으로 1962년 10월 소집돼 1965년 12월 폐회했다. 1869년 교황 피우스 9세가 소집한 1차 공의회가 교황의 우위성을 확립했다면, 2차 공의회는 ‘회개와 쇄신’을 기본 정신으로 교회를 개혁하고 통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 제도와 예식에 대한 광범위한 재해석으로 교회가 세속 및 시대와 호흡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현대교회의 혁명’으로도 불린다.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파문을 취소하는 등 동-서 교회 사이 반목 해소에도 기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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