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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4 17:07 수정 : 2005.04.24 17:07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라면 그것이 발호하도록 허용하는 물적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자본의 세계화다. 유럽 좌파가 ‘제3의 길’이라는 옹색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은 것도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이런 물적 조건의 강제력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모색도 자본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개념에서 출발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발상 위에 서 있는 것이 노동의 세계화다. 즉 자본의 세계적 기준에 대응해, 노동의 세계적 기준을 마련해 가자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인식에 근거해 최근 국제 노동조직들 내부에서 노동조합의 국제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실 노동조합의 국제화 논의는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북미와 서유럽의 제조업 대기업들 사이에서 해외 직접투자 붐이 일면서 이를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한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제기됐다. 이때 제시된 전략적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제기구들을 통한 규범을 제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국적기업 내부에 세계적 단위의 평의회를 조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국제 규범은 선언적 의미 이상을 얻지 못했고 세계콘체른평의회는 물적, 제도적 뒷받침을 얻지 못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노동조합의 국제화 논의를 부활시켰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함께 기업들의 초국적화가 심화되고 이들 기업의 의사결정 문제와 사회적 책임문제가 여론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초국적기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쟁점이 됐고, 국제 노조들은 공세의 기회를 얻었다. 국제 노조들은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아 두 가지 전략적 방향을 새롭게 설정했다.

하나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전략적 기조를 기존의 대항 개념에서 참여 개념으로 확대하고(소위 ‘실용적 국제주의’), 초국적기업을 직접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고자 노력했다. 다른 하나는 이 협상 테이블에서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표준협약을 초국적기업들과 직접 체결하고자 했다. 식품서비스노련이 1989년 최초의 세계협약을 다농그룹과 체결하는 데 성공한 이후, 금속노련, 화학에너지노련 등이 연이어 초국적기업들과 세계협약을 체결해 나가고 있다. 2002년에만 이들 3대 국제노조가 체결한 세계협약이 11개에 이른다. 세계협약의 주요 내용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노동기준을 초국적기업의 모든 사업장에 최저 기준으로 적용하고, 초국적기업 최고 경영진과 국제 노조간의 교섭구조를 안정화시키는 것 등이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고 있는 노동의 세계화 전략의 성패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일러 보인다. 단지 여기에서 엿보이는 전략적 사고는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선언적 반대보다 적극적 대안을 모색하려는 현실 인식, 그리고 법률 등 외부적 규제보다 자신의 조직적 권한을 통한 협약적 노동 규제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 국제화로 눈을 돌릴 여유까지는 없겠지만 이제 막 사회적 교섭 테이블에 앉은 우리 노동 진영이 새겨볼 만한 전략적 인식이 아닐까 싶다.

강신준/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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