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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8 15:29 수정 : 2005.04.28 15:29

중국인 변호사가 뉴욕타임스에 기고

중국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반일 시위가 열리고 있지만 역사를 되돌아 보면 중국과 일본은 사실 별다른 차이가 없으며 중국인들의 '이중 기준'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한 중국인 변호사가 28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푸즈창 변호사는 이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중국과 일본은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일본의 약점 대부분을 중국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제2차 대전 동안 저질렀던 범죄들, 즉 중국인들을 강제로 '위안부'로 삼은 것이나 1937년 난징 대학살 등에 대해 중국인들이 격분하고 있으며 일본이 박물관이나 교과서를 통해 이러한 역사를 왜곡할 때 분노가 두 배로 커진다고 설명했다.

푸 변호사는 그러나 중국 역사를 덮고 있는 침략과 학살, 혹은 최근의 시위 억압 등 중국인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일본군의 행동과 중국인 병사들의 행동을비교한다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일본 포로수용소의 강제노동을 생각할 때 중국의 강제노역소를 떠올리게되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광산에 들어가 목숨을 잃는 중국 광부들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푸 변호사는 또 오늘날 중국 빈민들의 권리가 일본 점령 당시 가련한 '식민지노예'의 권리보다 더 잘 보장받고 있는지, 16년 전 톈안먼 사태 때 비무장시민들이 숨진 것은 학살이 아닌지, 그리고 교과서에서 역사를 덮으려는 일본의 꼴사나운 노력이 중국 교과서에서 생략과 편향된 기술보다 더 나쁜 것인지를 반문했다.

중국 교과서에는 1950년대 후반 마오쩌둥이 이끌었던 대약진 운동이 사실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무모한 경제계획이었고 이로 인해 2천만~5천만명의 중국농민들을 굶어죽게 한 사실이 빠져있으며 아무도 당시의 정확한 사망자수를 모른다고 푸 변호사는 주장했다.

그는 또 1950년대 '반혁명주의자들'을 억압할 때와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그리고 톈안먼 사태 때 몇 명이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난징 대학살 때는 30만명이죽었다고 주장한다면서 숫자에 대한 확신은 누가 죽였는가에 따라 다른 것이냐고 꼬집었다.

푸 변호사는 이어 일본의 전쟁범죄로 인한 중국인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고 도쿄에서 시위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본 군국주의를철폐하라"고 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서는 사망 광부의 미망인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줄지 여부를정부가 정하며, 톈안먼 사태 희생자 가족들의 집 현관에는 아직도 경찰이 지키고 있고 시위대들은 승인받은 주제에 대해서만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이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중국이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중국인 자신들의 이중기준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충고로 글을 맺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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