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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러시아 군인이 11일 남오세티야 츠한발리 외곽에서 숨진 그루지야 군인의 주검을 지나쳐 달리고 있다. 츠한발리/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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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러시아 헬기 폭격받은 탱크 처참한 잔해만
"고리시 퇴각 그루지야 군인 500명 중 15명 생존"
러시아 군이 그루지야 영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는 발표가 나온 뒤인 12일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65㎞ 떨어진 고리시(市)로 가는 길에는 러시아의 막강 화력에 '쑥대밭'이 된 그루지야 군 패퇴의 흔적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프로 10여 분을 달리자 후방에 배치된 그루지야 탱크가 도로 옆에 서 있고 탱크 위에는 한 병사가 목만 내민 채 가쁜 숨을 돌려세우고 있다. 20여 분쯤을 더 가는 동안 도로 옆에는 주인 없이 버려진 탱크와 장갑차, 박격포, 군용 트럭이 즐비하다.
가다가 만난 한 마을 주민은 "그루지야 군인들이 모두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취재진이 탄 듯한 차들이 뜸뜸이 고리 쪽으로 향했지만 시내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 민간 차량의 접근을 막는 군인이나 경찰은 없었다. 그루지야 정부가 상황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한 외국 기자의 말이 생각났다.
인구 5만의 고리시는 남오세티야에서 25km 떨어진 지역으로 그루지야의 유일한 동서 간 고속도로 상에 위치한 교통 요충지로 아직도 소비에트 지도자인 조지프 스탈린의 생가가 보존돼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리시가 위험 지역이고 트빌리시에서 고리로 향한 도로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고리시 문턱에서야 알았다. 고리시를 10㎞ 가량 남긴 지점에 오자 고리시 서쪽의 둔덕에서 금방 폭격을 맞은 듯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독일 기자는 "네덜란드 기자 한 명이 고리에서 죽었다"고 전해줬다.
시내에서 3-4㎞ 못미친 곳까지 이르자 도로 왼편에 폭격을 받은 그루지야 탱크 한 대가 시커먼 잔해만 남은 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 맞은 편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민간인 차량이 금방이라도 검은 연기를 내뿜을 듯 주저앉아 있고 그은 자동차의 잔해는 폭탄의 파편처럼 도로 곳곳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주변에는 탱크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기관총 탄알들도 듬성듬성 눈에 띈다.
바로 옆에서 만난 마을 주민은 "어제 밤 러시아 헬기가 트빌리시로 퇴각하는 그루지야 탱크를 폭격했다"며 그루지야 군인들이 수없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리 시내에서 불과 한 시간 전까지 총격전이 벌어졌다. 시내는 텅 비었고 그 곳으로 가는 건 매우 위험하다"며 더 이상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마침 고리 쪽에서 걸어오던 40대 남자와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물어보니 고리 시 북쪽에 사는 피난민이었다. 자동차 정비소에 일한다는 시우카슈일은 8살 난 아들과 둘이 정처 없는 피난 길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어제밤에 고리시에서 러시아 군인과 그루지야 군대 간에 전투가 있었다. 집에 있으면 살기 어려울 것 같아 떠났다"면서 갈 곳은 없고 무작정 트빌리시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시우카슈일은 "고리시에서 트빌리시로 퇴각하던 그루지야 군인 500명 중에 15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시골엔 죽은 사람이 없지만 도심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처참한 참상을 떠올린 듯 몸서리를 쳤다. 그는 이날 새벽에 집을 나와 점심 때까지 계속 걸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면서 러시아 군이 폭격할 때면 나무 밑에 숨어 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나와 걷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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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병사들이 11일 남오세티야 주도 츠힌발리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진 제모니코지 마을에서 솟아오르는 포연을 바라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그루지야군의 충돌로 러시아군 4명이 숨졌고 츠힌발리에 대한 그루지야군의 공중폭격과 포사격이 재개됐다고 통신이 전했다. 제모니코지/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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