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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출석한 경영자들
평가등급 부풀리기 시인
‘저승사자’로 불리는 신용평가 회사들이 심판대에 올랐다.
그들의 부정적 평가 한마디에 기업의 생명이 끝장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지만, 책임을 방기해 지금의 금융위기를 방관하거나 초래한 죄목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 무디스, 피치의 최고경영자(CEO)들은 22일 미 하원 금융위기 청문회에 섰다. 이들이 채권과 증권 발행주들의 압력을 받아 평가등급을 부풀리는 등 부실한 평가시스템이 드러났다. 평가사들이 증권을 발행하는 기관에서 수수료를 받아,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근본 문제점도 다시 확인됐다.
헨리 왁스만 하원 주택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 위원장은 “평가사의 심각한 잘못으로 우리의 전체 경제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며 “수 백만명의 투자자들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믿었지만 평가사는 신뢰를 무너뜨렸고, 규제당국은 경고를 무시하고 아무런 보호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 평가사들은 모기지 연체와 주택가격 하락이 이어지자 뒤늦게 모기지 관련 주식의 신용등급을 낮췄고, 시장의 신뢰를 잃은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등 금융기관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다.
평가사 직원들이 오래 전부터 평가등급 부풀리기에 대해 고민했던 사실이 의회가 이날 공개한 이메일에서도 드러났다. 무디스의 한 직원은 2007년 9월 “평가대상 회사가 제공한 정보에 대해 우리는 눈을 딱 감고 전혀 확인하지 않는 것 같다”며 “우리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자책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의 한 직원은 “이 엉성한 집이 무너질 때쯤 우리 모두 부자가 돼서 은퇴했기를 바라자”라고도 썼다.
이날 청문회에서 평가사 회장들의 뒤늦은 자책도 이어졌다. 데븐 샤르마 스탠더드앤푸어스 회장은 “우리의 자료와 가정이 상황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 점이 드러났다”고 시인했다. 스티븐 조인트 피치 회장은 “미국 주택시장 하락의 규모와 속도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레이먼드 맥다니엘 무디스 회장은 “2004~2005년 우리 경쟁사들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무조건 투자적격 등급을 줬다”며 “경고하려고 했지만 시장이 돌아가다보니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가사들은 보완 조처로, 등급결정 과정과 투명성을 향상시키고, 근거가 된 방법론을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평가사들이 투자자의 손실을 떠맡거나, 평가사를 상대로 한 투자자들의 소송을 허락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뉴스> 등이 이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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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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