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군이 그대로 남겨두거나 땅에 묻었던 화학무기들은 그 후에도 2천명이넘는 중국인들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 일본은 지난 1939년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활동한 731부대의 존재에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중국 관영 언론들은 한국인과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 최소한 3천명이 이들의 생물무기 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군의 생물무기로 희생된 중국인 수는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중국은 일본의 전범행위를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731부대 현장을 세계유산으로신청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계속된 일본 점령 중 죽거나 다친 중국인 수는 3천500만명에 이른다. 731전시관의 학예관 겸 관장인 왕펑은 "731부대는 일본군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실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해친 곳이다. 그들은 할 수 있는 온갖 잔학행위를 다저질렀다. 이곳은 독특한 세계 유산의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나치 수용소와 일본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어 중국측은 731부대 역시 그 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펑 관장은 최근에도 일본군이 남기고 간 가스탄 등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면서 "일본이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들의 군사주의가 되살아나 역사의 비극이 재현될 것 같은 위기감이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하얼빈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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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된 ‘일본군 생체실험장’에 가다 |
중국이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생체실험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만주 731부대 박물관을 로이터 통신 기자가 찾았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핑팡에 위치한 731부대 유적은 반쯤 무너진 벽돌 건물과 풀이 무성한 뜰, 타일을 바른 지하 갱도와 비밀 지하 실험실등이며 이중 온전하게 남은 단 하나의 건물인 부대 본부 사무실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몸서리쳐지는 수십년 전의 참극을 증언하고 있다.
회색 조각상은 일본군 병사들이 중국인 남자를 찍어 누르고 있는 동안 군의관이가래톳균인지 콜레라균인지 탄저균인지를 주사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포로가바닥에 누워있는 유리방의 내부 기압이 치사 수준까지 올라가는 장면을 군의관이 관찰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731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치로와 다른 부대원들은 벽에 초상화로 걸린 채 관람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들 중 전범으로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시 사진들은 생체 실험 끝에 숨진 마루타들의 시체들을 보여주며 한 사진에는희생자의 두개골 더미가 드러나 있다.
관람객들은 극저온과 극고온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기 위한 실험실로사용됐던 어두운 맨 시멘트 방을 거닐게 된다.
일본군은 패전으로 퇴각하게 되자 자신들의 만행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살아남은포로들을 놓아둔 채 부대를 폭파했으나 일부 포로는 화상을 입은 채 살아남았고 일부 시설도 그대로 남았다.
당시 일본군이 그대로 남겨두거나 땅에 묻었던 화학무기들은 그 후에도 2천명이넘는 중국인들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 일본은 지난 1939년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활동한 731부대의 존재에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중국 관영 언론들은 한국인과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 최소한 3천명이 이들의 생물무기 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군의 생물무기로 희생된 중국인 수는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중국은 일본의 전범행위를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731부대 현장을 세계유산으로신청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계속된 일본 점령 중 죽거나 다친 중국인 수는 3천500만명에 이른다. 731전시관의 학예관 겸 관장인 왕펑은 "731부대는 일본군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실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해친 곳이다. 그들은 할 수 있는 온갖 잔학행위를 다저질렀다. 이곳은 독특한 세계 유산의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나치 수용소와 일본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어 중국측은 731부대 역시 그 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펑 관장은 최근에도 일본군이 남기고 간 가스탄 등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면서 "일본이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들의 군사주의가 되살아나 역사의 비극이 재현될 것 같은 위기감이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하얼빈 로이터/연합뉴스)
당시 일본군이 그대로 남겨두거나 땅에 묻었던 화학무기들은 그 후에도 2천명이넘는 중국인들에게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 일본은 지난 1939년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활동한 731부대의 존재에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중국 관영 언론들은 한국인과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 최소한 3천명이 이들의 생물무기 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군의 생물무기로 희생된 중국인 수는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중국은 일본의 전범행위를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731부대 현장을 세계유산으로신청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계속된 일본 점령 중 죽거나 다친 중국인 수는 3천500만명에 이른다. 731전시관의 학예관 겸 관장인 왕펑은 "731부대는 일본군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실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해친 곳이다. 그들은 할 수 있는 온갖 잔학행위를 다저질렀다. 이곳은 독특한 세계 유산의 현장이다"라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120만명이 희생된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나치 수용소와 일본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어 중국측은 731부대 역시 그 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펑 관장은 최근에도 일본군이 남기고 간 가스탄 등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면서 "일본이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들의 군사주의가 되살아나 역사의 비극이 재현될 것 같은 위기감이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하얼빈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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