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6 19:16
수정 : 2008.11.0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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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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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연속 기고,서재정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한 시대가 저물고 또다른 연대기가 시작한다. 이번 미국 선거로 지난 30년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당장 막을 내리는 것은 부시 시대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지지율은 올해 들어서는 20%대로 떨어졌고,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79%에 이른다. 선제공격 독트린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이라크라는 수렁에 침몰하고, 일방주의를 주창했다가 세계에서 일방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 철폐를 밀고 나가다가 시장 자체가 철폐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카트리나 태풍 피해자는 아직까지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첨단화된 군사변환으로 ‘전방위적 압도’를 누리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꿈은 전방위적 실패로 끝나고 있다. 이번 투표는 그 실패의 시대에 찍어준 마침표이다.
그러나 막을 내리는 것은 부시 행정부만이 아니다. 1980년대부터 전개되어온 신자유주의도 함께 막을 내리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국내적 복지정책에 뿌리를 둔 자유무역주의를 추구하는 ‘착근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를 뒤집는 것이었다.
국가의 복지지출을 줄이고, 공공부문 고용을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시장에 대한 과세와 규제를 철폐하는 신자유주의는 이후 세계를 무대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서 파생상품이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고, 이 시장에서 저 시장으로 쉴 새 없이 이뤄지는 금융거래로 돈이 돈을 만들어내고, 국가는 감독은커녕 그 실체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그림자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 ‘고삐 풀린’ 자유주의는 이제 세계적인 파산을 동반하며 종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착근 자유주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 세계를 풍미하고 권좌를 물려준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이제 그 30년 집권의 종말을 보고 있다. 이 종말은 이미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대안을 추구하는 중남미 좌파정권들의 득세와 유럽 중도좌파들의 득세로 예고되고 있었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제, 사회복지, 신경제동력 창출 등을 강조하는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도 세계의 흐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시장 규제 철폐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워런 버핏이 ‘대량살상 금융무기’라고 일컬은 금융 자유화에 대한 방어적 조처로 감독과 규제와 제재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시점에, 금융시장 자유화를 위해서도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국에서는 이제 ‘물 건너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한국 국회가 먼저 선제적으로 비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자유주의 이전의 ‘삽질경제’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고, 새로운 시대는 그 윤곽만 어슴푸레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은 오늘의 선택으로 완성될 것이다. 하여 묻는다. 신자유주의의 종언은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인 파괴’가 될 것인가, 과거의 관습이 미래를 규정하는 ‘격세유전’이 될 것인가? 미국민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표를 던졌다. 한국민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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