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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관련한 사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단상을 제공했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의 엔론이나 월드컴, 타이코 같은 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 등 비윤리적 관행을 통한 이윤추구는 주주 등 투자가들로 하여금 기업지배구조나 기업경영 개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이러한 잘못된 관행들은 기업들로 하여금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도록 했다. 굳이 비윤리적 기업경영 관행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가 증가하고, 또 사회책임펀드 같은 다양한 목적 펀드들이 등장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 여부나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대한 공시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점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에서도 미국과 유럽 간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자본시장이 잘 발달한 미국에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자본의 이익 극대화와 안정성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투자 자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관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이 보편화하고 대규모 기관투자가들이 주주행동주의를 주도하면서 투자 대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더구나 다양한 형태의 사회책임투자 펀드에 의한 선별 투자 등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다. 이와 같이 미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들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투자 잣대로 활용되고 발전해왔다.
이에 비해 유럽의 기업 사회책임이나 사회책임투자는 주주 뿐만 아니라 기업의 비재무적 이해 당사자들, 예를 들면 노동자와 시민단체들의 견해와 이해관계를 기업 경영자에게 전달하고 조정함으로써 기업경영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여기에는 기업과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정책 차원의 개입도 커다란 몫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 환경보고서나 지속가능보고서 등이 초안되고 그것의 법제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유럽에 확산되고 있는 미국식 주주가치 이념과 기업경영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병원을 운영하여 사회공헌백서를 만들고 대학에 건물을 기부함으로써 사회책임 경영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알려지고 싶었던 삼성그룹이 과연 기존 주주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경영을 해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무리한 진출이나 그룹 계열사를 동원한 부의 편법 상속 등은 힘없는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사회책임 경영을 위한 삼성그룹의 노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배주주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들을 위한 것이었거나,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업의 여러 이해당사자와 경영자 간 의사소통 방식으로서 사회책임경영이라는 유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삼성그룹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 스스로 ‘무노조 경영’이라는 신화를 깨지 않는 한 삼성의 사회책임 경영은 어디까지나 공문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송원근/진주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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