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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8 17:26 수정 : 2005.05.08 17:26



생산정점 “2006년”-“21세기 중반” 맞서
IEA “유전 투자 미흡하다” 우려성명
자원 전쟁-대체에너지 선택 ‘갈림길’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올해 초 메이저 석유회사 셰브론 텍사코의 최고경영자 데이브 오라일리는 이렇게 ‘고유가시대 ’를 선언했다. 지난 98년 배럴당 10달러선을 유지하던 유가는 지난해 57달러선을 돌파한 뒤 지금도 50달러선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투자회사 골드만 삭스는 올해 초 유가가 일시적으로나마 배럴당 10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해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지난 70년대 1·2차 석유파동의 배경이 석유수출국기구(오펙) 회원국들의 급격한 감산 정책이었던 것과 달리 현재 고유가의 주요 원인은 ‘아무리 원유 공급을 늘려도 폭발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생명선이나 다름 없는 석유가 언젠가는 바닥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언제 석유생산이 정점을 넘어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인지’ 하는 해묵은 ‘석유생산 정점’ 논쟁이 다시 불 붙고 있다.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와 셸, 비피(BP) 등에서 일했으며 <다가오는 석유 위기>라는 책을 쓴 영국 지질학자 콜린 캠벨은 지난달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석유생산의 정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쯤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인류가 이미 약 9440억배럴의 석유를 써버렸으며 앞으로 7640억배럴 정도를 채굴할 수 있고, 1420억배럴 정도는 추가로 발견할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원유 생산은 내년쯤 정점에 이른 뒤 매년 2~3%씩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나 오펙, 석유산업 옹호자들은 이런 ‘비관론’은 현실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며 21세기 중반 정도에나 원유 생산이 줄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2000년 미국 지질조사연구소(USGS)는 새로 발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매장량 등을 더하면 지구상에는 앞으로도 3조배럴의 원유가 남아 있으며 앞으로 30년 동안은 생산 정점에 도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생산 정점을 2013~2037년쯤으로 보고 있고, 오펙도 수요증가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50~100년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매장량이 확인됐다고 밝힌다.

전문가들은 또 최근 디지털 기술이 유전탐사에 활용되고 있어, 3~10년 안에 지금까지 탐사하지 못했던 심해에서 원유를 찾아낼 수 있고 탐사 실패율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새로운 유전들을 계속 찾아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달 초 석유 특집기사를 실은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컨설팅 그룹인 헤롤드의 지난 3월 통계를 인용해 세계 주요 석유기업들이 이미 생산량 감소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이저 석유회사나 국영석유회사들은 새로 발견한 원유 매장량을 정치적,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부풀리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생산중인 유전의 80%는 1970년대 이전에 발견돼 생산량이 줄고 있으며 전세계 생산량의 10%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가와르 유전 등 중동지역의 4개 유전에 집중되고 있다.

더구나, 석유기업들은 유가 급등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수익을 내면서도 신규 투자를 꺼리고 있어 고유가의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3일 파리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 각료회의를 마친 세계 26개국 에너지 각료들은 에너지 수요 증가와 고유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투자 강화 등 효과적인 대책이 시급하지만, 석유회사들이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파티 비롤은 5일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에너지 기업들이 적정 투자량에 비해 15~20%를 덜 투자했다”며 기업들이 수익을 주로 주주들에게 배분하고 있으며 해외기업들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는 중동 산유국에서 유전 개발권을 따내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지적했다. 또한, 메이저 기업들은 유가가 언제까지 현재 가격을 유지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생산까지 약 25년이 걸리는 유전 개발에 너무 큰 투자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의 종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전세계 수요가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원유는 하루 8300만배럴 정도지만 2020년이면 약 1억500만배럴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시대도 석유가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말처럼 석유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갑작스레 끝날 수도 있다. 석유가 완전히 고갈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점을 지나 매년 2~3%씩 생산이 서서히 감소하면 세계 경제는 엄청난 중병을 앓게 되고, 원유를 통제하기 위한 쟁탈전을 거세질 수밖에 없다. 중동 등에서 한정된 석유 자원을 둘러싼 ‘자원 전쟁’에 끼어들 것인지, 에너지 소비량을 급격히 줄이고 대체 에너지 비중을 늘릴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자원 민족주의 높은 파도 석유 메이저도 ‘멸종위기’

러시아, 외국자본 절반 못 넘게 제한
중남미 연합 석유회사 설립 논의도

미국의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은 지난 2월 제너럴일렉트릭(GE)을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1위 기업에 등극했다. 지난해 고유가로 250억달러(약 25조원)의 순익을 기록하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하지만, 석유 메이저들이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원유 고갈’뿐 아니라 최근 부활하는 ‘자원 민족주의’의 도전 속에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애초 중동의 무기였던 ‘자원 민족주의’가 최근엔 러시아, 남미, 중국과 인도로 번져나가고 있으며, 과거에는 신기술과 자금을 얻기 위해 외국 기업에 멍석을 깔아줬던 나라들이 이제는 국영 기업을 키워내며 외국 기업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5%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정부는 지난 2월 새로 발견되는 천연자원 개발에 참여하는 외국기업의 지분을 49% 이하로 제한한다고 발표했으며, 4월엔 BP와 러시아 기업의 합작회사인 테엔카 베페(TNK-BP)에 10억달러의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세계 5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국영석유회사인 페데베사(PDVSA)의 민영화를 막기 위해 외자 합작 비율을 50%로 줄인 데 이어 미·영의 석유 메이저에 맞서기 위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연합한 ‘볼리바리안’ 석유회사 설립을 논의 중이다. 아프리카에서 남미까지 전세계에서 유전 확보에 나선 중국해양석유(CNOOC)의 회장 푸 청위는 “기술도 얻을 수 있다. 돈도 있다. 하지만, 자원이 없다면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을 것”고 말한다.

점점 치열해지는 에너지 경쟁 속에서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이루기 위해 나서면서 자원민족주의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석유 메이저들이 5년 안에 대규모 인수·합병에 처하는 등 업계 질서가 새롭게 재편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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