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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6 23:48 수정 : 2005.06.16 23:48

상하이에 세워진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인 대일살롱이 있던 훙커우구 둥바오싱로 125롱 건물에서 1953년부터 살았다는 양즈칭(76) 할아버지가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상하이/연합


한국여성 성노리개 고통

일본의 중국 침략 당시 세워진 최초의 ‘일본군 종군위안소’가 중국 상하이에 있었으며, 일본군이 상하이에서 위안소를 집중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곳으로 끌려간 많은 한국 여성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상하이사범대학 역사학과 쓰즈량 교수(중국위안부연구센터 주임)가 지난 13년 동안 상하이 지역을 집중 조사한 결과, 일본군이 1931년 11월에 가장 먼저 세운 ‘대일살롱’이 상하이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상하이 지역에서 역사자료와 주민 고증 작업을 통해 확인된 위안소만 149곳이나 됐다.

쑤 교수는 특히 많은 한국 여성들이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상하이로 끌려왔으며, 위안소에 강제 구금된 채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고통스럽게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들은 초기에는 일본 기녀 또는 창녀 출신 여성(주로 일본군 장교 상대)들이었으나 주둔 일본군이 늘어나면서 한반도에서 끌려온 조선 처녀들과 중국 여성(주로 사병들 상대)들이 대거 동원됐다. 쑤 교수는 “조사 결과 20~28살이었던 이들 여성의 삶은 지옥과 같았다”며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대부분 일련번호를 부여받고 작은 쪽방에서 살면서 감금과 폭행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소가 가장 먼저 운영되고, 가장 많은 위안소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됐다”며 “위안소 수가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쑤 교수가 확인한 위안소들은 주로 상하이의 훙커우, 충밍, 푸둥, 우쑹, 자팅 지역에 집중돼 있다. 특히 일본 해군 사령부가 있었던 훙커우 지역에만 무려 70곳에 달했으며, 이곳에는 당시 일본군 장교를 위한 위안소였던 ‘대일살롱’ 건물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또 1936년께부터는 당시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 상인들이 운영하던 술집 등도 ‘일본군 위안소’로 대거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쑤 교수는 “확인된 149곳 외에도 상하이에 더 많은 위안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확한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상하이 일본군위안소 실록>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상하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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