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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1 08:16 수정 : 2005.06.21 08:16

필리핀의 '도덕적 나침반'으로 불리며 독재자 페르디난드마르코스 등 2명의 대통령을 축출한 '피플 파워' 혁명의 구심점 역할을 한 하이메신 추기경이 21일 선종했다.

향년 76세. 사망원인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3년 11월 마닐라 대주교 자리에서 은퇴한 신 추기경은 지난 수년간 신장 질환과 당뇨병 등 질병을 앓아왔으며 지난 4월에는 차기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 회의(콘클라베)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신 추기경의 대변인인 훈 세스콘 신부는 추기경이 지난 19일 저녁 고열로 카디널 산토스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며 장기장애로 고통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종시간은 21일 오전 6시15분(현지시간). 필리핀 가톨릭 지도자들은 추기경 가족들과 장례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추기경 시신은 마닐라 성당에 옮겨졌다.

정치적인 문제 뿐 아니라 산아제한에서 빈곤과 이라크전쟁 반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입장을 밝혀온 신 추기경은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지도자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그는 2003년 11월 75세 정년을 맞아 30여 년 간 맡아온 마닐라 대교구장 직에서물러나고 건강문제로 공개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으나 필리핀에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남아있다.

중국계 상인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16자녀 중 14째로 태어난 신추기경이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지난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와 결별한 당시군 참모차장 피델 라모스와 국방장관 후안 폰세 엔릴레를 보호하기 위해 마닐라시의경찰과 군 본부를 포위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마르코스를 부패와 인권침해 혐의로 축출시킨 '피플 파워' 혁명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평화스러웠던 이 봉기는 세계적으로 독재정권들을 교체시키는 전조가 됐다.


신 추기경은 또 2001년 부패와 실정 혐의로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축출하는데 기여했으나 이 문제로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빈민층과 갈등을 겪었으며개신교도였던 피델 라모스 대통령과는 인공적 산아제안 문제로 대립하기도 했다.

(마닐라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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