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은 생득권” 믿음
밀어붙이기식 처리가 도화선
프랑스 노조 ‘노동자의 힘’ 조합원인 에리크 질리(50)는 지난 20일 아내와 두 딸, 조카를 데리고 마르세유의 거리에 섰다. 연금개혁안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목에 커다란 북을 건 그는 시위대에 흐르던 사회주의운동 노래인 ‘인터내셔널’을 따라 불렀다. 대다수 프랑스 국민들처럼, 그에게도 장기간 휴가, 국가 의료보장제, 60살 은퇴 같은 사회보장은 사치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생득권’ 같은 것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프랑스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이다. 은퇴 정년과 연금 100% 수급 나이를 늦추는 것은 이미 유럽의 대세다. 그럼에도 유독 프랑스에서 저항과 반발이 거센 배경에는 프랑스 특유의 역사적 경험과 전통이 깔려 있다. 프랑스는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부 때 은퇴 나이를 65살에서 60살로 앞당긴 이래, ‘60’이란 숫자는 사회적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질리는 “60살 은퇴는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세대가 쟁취한 것”이라며 “최근 수년 새 우리는 선조들이 싸워 이룬 모든 것을 잃고 있는데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치학자 에티엔 슈바이스구트는 “프랑스는 지금 유서 깊은 문화적 반사반응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미화원 스테파니(22)는 “연금은 가족의 문제이며, 노동조합은 우리의 큰 가족”이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연금개혁안이 프랑스인들의 정서 깊은 곳에 자리잡은 신경을 건드린 셈이다.
프랑스 석학이자 세계적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21일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 기고에서 “프랑스의 좌파 노조들은 연금제도 규제가 사회주의로 향하는 역사적 성과물인 ‘복지국가’에 어긋난다고 보며, 프랑스가 스칸디나비아권·영국·독일 등의 재정지출 감축 선례를 따를까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어떻게 복지국가와 경제 역동성의 균형을 찾아가느냐는 것이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도 이미 20~30년 전보다 훨씬 시장경제화되고 있다”며 “사르코지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은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아주 심각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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