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11.15 08:35 수정 : 2010.11.15 08:35

테헤란 시내 중심 고가를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이 건물 오른쪽엔 호메이니가, 왼쪽엔 반미 구호가 그려져 있다.

[테헤란 리포트] 제재 맞선 이란을 가다
아프리카·아시아 관계 강화하고 미국 등 서구엔 단호
“위협 과장” 비판도…젊은층 ‘인터넷 무장’ 진실 추구

길 가던 남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사진 찍다 경찰한테 사진기 압수당할 수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한복판 10층 건물에 사진기를 들이대던 손이 떨렸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여덟 줄기 붉은 선을 타고 여덟 발 폭탄이 투하되는 미국 성조기 위로, 포화 속 강렬한 한 문장이 침몰하듯 기울었다. ‘미국을 타도하라!’

같은 문장은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모살라(그랜드 프레이어홀)에서 지난달 말 열린 17회 국제언론전시회 행사장 바닥에서 다시 보였다. 이스라엘까지 추가된 문장을 밟고 선 대학생은 힘줘 강조했다. “미국은 이란의 적이다. 우린 결국 이길 것이다.” 연단에 놓인 액자사진 속에서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31년 전 반미 이슬람혁명을 이룬 뒤 8년에 걸친 이라크와의 전쟁, 4차에 걸친 국제사회의 극심한 제재를 받고 있다고 보기에 테헤란은 너무나 ‘글로벌화’된 도시였다. 시내엔 전시회 기간 앞뒤로 영화·철학·교통·투자·해양생물·관광 산업 등을 주제로 한 국제행사 알림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란에 머문 기간에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이 이란을 찾아 “제국 권력과 헤게모니에 맞선 독립 국가들의 저항 전선을 구축하자”고 다짐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아프리카 국가와 이라크·레바논 등에 대한 원조를 통한 영향력 확대도 계속되고 있다. ‘동맹 확대’를 통해 생존의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언론전시회도 ‘이슬람과 제3세계 언론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참가 미디어 중 한·중·일 3국을 제외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메흐디 가잔파리 통상부 장관이나 마누셰르 모타키 외무부 장관 모두 한국·일본의 제재 참여가 이란과의 관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대해선 단호했다. 모하마드 호세이니 문화부 장관은 “서구 미디어 선전·선동의 핵심은 ‘안티 무슬림’이자, 이란을 ‘핵무기 국가’로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이슬람 교리의 ‘심장’ 격인 도시 콤의 한 성직자는 “이란을 무조건 지지해달라고 하지 않겠다. 다만 현실을 반영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 이란에서도 다른 목소리는 존재했다. “집권층과 미디어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신정 체제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들과 정부가 체제 유지를 목적으로 미디어를 동원해 서구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 성향의 매체들이 폐간되면서 이란 미디어 대부분이 보도하는 기사는 대통령과 최고 지도자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게 대부분이었다. 이란의 한 신문 기자도 “내가 쓴 기사를 나도 신뢰하지 않을 때가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테헤란에 상주하는 한 외신 기자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는 “서구 언론이 이란의 반정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다면, 언론 통제가 심한 이란의 미디어는 집권층에 불리한 기사를 외면한다”며 “서구와 이란 언론 어느 곳에도 이란의 진실은 없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실’에 접근하려는 이란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배경이다.

갓 스무 살이 된 한 대학생은 “이란과 서구가 각자의 미디어로 서로를 바라보는 한 오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역설적으로 이란 혁명은 문맹률을 거의 제로로 낮추고 모든 이들의 대학 입학권을 보장하며 이란 전역을 ‘도시화’시킨 측면이 있다. 느린 속도와 이메일 검열 같은 환경 속에서도 인터넷 이용자가 전체 인구의 40%가 넘는 28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이란은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 서구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도 엷어져 있었다. 전시회 한 부스엔 영화 <람보>의 주인공 실베스터 스텔론의 신작 소개에 큰 지면을 할애한 서구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잡지도 자리잡고 있었다. 이 잡지의 여성 편집자는 “미국 문화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즐길 만한 가치도 충분하다”고 했다. 실체적 진실과 실용을 좇는 세대가 이란에서도 자라나고 있다.


테헤란 콤/글·사진 이문영 김영희 기자 moon0@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한 고교 교사가 전하는 충격적인 학교 모습
■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인분 투척
■ 노벨상 유력 후보였던 한국의 과학자
■ 박태환 아시아는 좁다 자유형200m 금메달
■ 단일야당 정권교체 염원 시민 뭉쳤다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