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26 18:27
수정 : 2005.06.2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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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국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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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조선에 첫 해군 무관으로 파견됐던 조지 포크 소위(사진)가 미국 근세 사상 첫 해외 첩보원이었다.”
<미주한국일보>는 25일 해외 첩보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존 프라우트 미국 육군 예비역 대령이 중앙정보부(CIA)에 낸 <조선의 첫 미 해군 무관>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보도했다.
논문은 포크 소위가 “문화와 풍습, 언어가 다른 조선에서 3년 동안 군사·정치·사회 정보를 입수해 미국의 극동아시아 정책 마련에 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포크 소위는 워싱턴과 뉴욕, 보스턴 등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조선 특별사절단을 따라 1883년 조선에 개관한 미 공사관의 해군 무관이 됐다.
그는 정보수집 교육 및 경험이 없었는데도 말과 풍습, 문화를 빨리 익혀 조선왕조 대신들과 가깝게 지냈고, 심지어 고종 황제로부터 군사 자문관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논문은 “1884년 12월 서울에서 일어난 무력 소요(갑신정변)로 그는 모든 재산을 잃고 미국 정부로부터 신속한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자 당시 조선 우표 등 기념품을 미국의 친척을 통해 판 수익금으로 활동자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조선 조정에 포크 소위를 소환하도록 공작을 펼쳤고, 조선과 마찰을 우려한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 3년 동안의 첩보원 생활을 접었다. 그는 군 생활을 마친 뒤 일본 여성과 결혼해 일본에서 살았으며, 37살 때인 1893년 8월 등산을 간 뒤 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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