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뉴스 국제]
아프간전(7월), 이라크전(10월) 관련 미국 국방부의 비밀문서, 미국 국무부의 외교전문(11월) 등 세차례에 걸친 대규모 문서공개를 통해 위키리크스는 21세기 정보공개의 새로운 혁명을 불러왔다.
인터넷이라는 혁신적 정보기술의 바탕 위에서 세계 유수의 언론들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여 정보의 공개와 확산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연방정부 공무원의 위키리크스 사이트 접근을 차단하고 위키리크스에 서비스를 제공하던 미국 업체들이 잇따라 서비스를 끊으면서 ‘디지털 매카시즘’이라는 논란까지 불렀다. 이는 국가기밀 공개의 허용범위, 언론의 자유와 책임 등을 둘러싼 논의로 이어졌다. 특히 정보 투명성이라는 위키리크스의 ‘대의’는 전세계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위키리크스를 대신해 마스터·비자카드 등을 상대로 사이버전쟁을 감행하는 이른바 ‘핵티비스트’(해커 활동가)들이 등장했다. 여기엔 고급 정보기술을 갖추지 않은 일반 누리꾼들까지 가세해 미래 사이버전쟁의 단초를 보여줬다. 무엇보다도 <가디언>이 “미국은 전지구적인 외교위기에 봉착했다”고 표현했듯이,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반세기 이상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제일주의)를 구가해온 초강대국 미국의 위선과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유엔 인사들의 인체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하거나 주재국에 협박을 서슴지 않는 내용의 전문 등이 공개되며 스파이와 외교관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는 미국 외교의 뒷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이패드·SNS 열풍…스마트혁명 원년
그 어떤 전자제품도 아이패드만큼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팔린 적이 없었다.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올 1월 선보이고 4월 미국에서 시판되기 시작한 아이패드는 올 한해 1300만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패드가 전자책·출판·언론 등 미디어영역의 판도를 뒤바꿀 태블릿피시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면, 페이스북과 단문 문자서비스인 트위터의 확산은 올해를 소셜네트워크시대로 만들었다. 페이스북은 6억명의 사용자를 거느린 엄청난 네트워크이자 새로운 플랫폼의 가능성을 드러냈고, 새로운 정치커뮤니케이션으로 활약한 트위터는 아이티 지진의 생생한 현장중계 등으로 1인 미디어의 힘을 보여줬다. 올 한해는 스마트혁명의 ‘원년’으로 기록될 만하다.
G2시대 연 중국, 차기지도자에 시진핑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급속한 쇠퇴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활기찬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대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앞으로 ‘대국 중국’을 이끌 차기 지도자로 시진핑(57) 국가부주석이 사실상 확정됐다. 시 부주석은 지난 10월 17기 5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돼 2012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아 5세대 지도부를 이끌게 됐다. 중국은 2012년까지 차기 지도부 재편을 위한 복잡한 정치게임을 예고하고 있다. 시 부주석은 새해부터 시작되는 12·5 경제계획에 제시된 ‘국부에서 민부로, 성장에서 분배로, 세계의 공장에서 첨단산업 강국으로’라는 미래 중국의 청사진을 실현할 과제를 안게 됐다.
‘멕시코만 원유유출’ 최악의 해양오염
지난 4월20일 미국 멕시코만에서 작업하던 영국 석유업체 비피(BP)의 원유시추시설 ‘디프워터 호라이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1명이 숨지고 최대 490만배럴로 추정되는 막대한 양의 원유가 바다를 시커멓게 오염시켰다. 사고 해역은 해양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죽음의 바다’가 됐고, 멕시코만과 인접한 루이지애나·플로리다·미시시피주 등은 어업과 관광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비피는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수칙을 무시했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미국 정부와 민간으로부터 수백억달러의 피해보상 및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했다. 이 사고는 역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록되며, 환경보호는 뒷전인 채 영리만을 앞세워 자연을 파헤치는 행태에 경종을 울렸다.
류샤오보 노벨상 수상…중, 거센 반발
중국의 반체제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의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중국과 서방의 갈등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중국식 국제질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겼다. 중국은 ‘서구의 음모’라고 반발하며 검열 강화, 류샤오보 친지들에 대한 가택연금과 감시, 노르웨이에 대한 항의, 외교사절단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식 불참 압박 등 강경조처로 대응했다.
류샤오보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에 참가한 뒤 줄기차게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해 왔으며, 2008년 일당독재 폐지와 인권 개선 등을 요구한 ‘08헌장’ 서명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 결국 12월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대리 수상자조차 참석 못한 ‘빈 의자’ 시상식으로 거행됐다.
‘아이티 지진’ ‘파키스탄 홍수’ 대재앙
거대 자연재난이 빈국들을 덮쳤다. 1월12일 진흙 쿠키로 연명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가난한 나라 중남미 아이티에 진도 7.0의 강진이 일어났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감옥이 무너졌고, 아이티 정부 공식 집계로만 약 23만명이 숨졌다.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최근에는 콜레라로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7월에 일어난 파키스탄 대홍수는 천천히 지속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 사망자는 약 2000명으로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파키스탄 대홍수 피해자는 약 2000만명으로 인도양 쓰나미와 아이티 대지진 피해자를 합친 규모보다 컸다. 한때 파키스탄 국토의 5분의 1이 홍수로 물에 잠겼다.
중-일 ‘센카쿠 충돌’…중, 강경외교 전환
9월7일 오전 일본이 실효지배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구바지마섬 북서쪽 해상에서 중국 어선이 영해침범을 이유로 정선을 요구하던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을 두차례 들이받고 나포됐다. 일본이 선장을 구속하고 기소하려 하자,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주장해온 중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은 선장을 무조건 석방하라며 희귀금속을 함유한 희토류의 대일 수출 통관을 막는 한편, 중국 주재 일본 건설회사 직원 3명을 군사시설 무단침입을 이유로 체포해 구금했다. 일본이 사실상 굴복해 중국 어선 선장을 석방한 뒤에야, 중국은 강경자세를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이 사건은 중국이 자국 이익의 관철을 위해서는 외국과 충돌도 피하지 않는 강경노선으로 외교정책을 전환했음을 각인시켰다.
미-중 촉발 환율전쟁, 글로벌로 확산
금융위기 이후 짓눌려온 세계경제는 올해 환율전쟁이라는 악재에 시달렸다. 수출 확대와 수입 제한을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이 통화가치 절하 노력을 펴는 가운데 경제대국들이 비난전을 벌이며 논란이 달아올랐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위안화 절상 압박으로 미-중 대립이 환율전쟁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여기에 일본, 한국, 브라질, 타이 등까지 가세하면서 환율전쟁 양상이 본격화하는 조짐을 보였다. 미국은 지난달 3일 6000억달러(약 690조원)어치의 국채 매입 계획인 ‘양적완화’를 발표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환율전쟁은 양적완화와 적극적 외환시장 통제라는 약점을 서로 노출한 미-중의 확전 기피와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의 자제 선언 이후 일단 수그러드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일랜드 등 ‘구제금융’…유럽 재정위기
지난 12월16일 아일랜드 의회는 850억유로 규모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한해 7~8%의 고성장을 거듭했던 ‘켈틱 호랑이’의 신화는 막을 내리고, 아일랜드는 경제재건과 재정적자 감축의 엄혹한 시련기에 접어들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가 지난 5월 처음 구제금융을 수용한 뒤, 불길은 아일랜드를 넘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까지 덮칠 기세다. 각국들이 앞다퉈 사회보장 축소를 뼈대로 하는 긴축재정안을 내놓으면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도 격렬해졌다. 일부 학자들은 수출 증가만이 살길이며 이를 위해선 통화가 평가절하될 수 있도록 유로화를 포기하자는 주장까지 한다. 과연 유로존은 유지될 수 있을까?
오바마의 민주당, 중간선거 최악 참패
11월2일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70여년 만에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공화당은 4년 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간신히 다수당 지위를 유지했으나, 공화당 의석수가 47석으로 늘어났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압승해 공화당이 주지사를 맡는 주가 29개주로 늘었다. 취임 당시 지지율이 70%대였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선거참패는 9%대의 실업률과 더딘 경기회복세, 13조달러에 이르는 연방정부의 부채, 2년 연속 1조달러를 웃돈 연간 재정적자 등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탓이었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보수주의 풀뿌리 운동인 ‘티파티’는 적극적인 선거운동으로 공화당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키면서 정국의 핵심세력으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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