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22 20:42
수정 : 2011.04.22 22:12
이메일 확산 용의자 수사의뢰
그리스 정부가 일파만파로 번지는 ‘채무 조정설’을 막기 위해 칼을 뽑았다.
칼을 뽑아든 대상은 미국 씨티그룹의 한 직원이다. 그리스 재무부는 21일 미국 씨티그룹의 런던지사 트레이더가 전날 보낸 전자우편이 채무 조정설을 확산시켰다며 사법 당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트레이더는 지난 20일 오후 1시42분께 “이르면 부활절(24일)인 이번 주말에 그리스 정부가 채무 재조정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최근 20분 새 확산되고 있다”는 전자우편을 외부로 발신했다. 또 “그리스와 외국 관료들이 계속 부인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채무 재조정 및 시한 조정에 대한 논의가 늘고 있다”며 “신용불안 사태 때, 만기 연장과 비교해 ‘헤어컷’(원금 일부 탕감) 조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자우편이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내용을 담은 건 아니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을 비롯해 유로존 고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그리스의 채무 조정설은 이미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비엔피(BNP)파리바의 유로존 경제전문가 켄 와트릿도 <더타임스>에 “트레이더들끼리 주고받는 말보다 유로존 국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들이 이런 분위기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그리스 정부는 “말도 안 되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철저한 응징을 예고했다. 그리스 재무부는 “허위사실 유포로 사회 불안이 야기되고 있다”며 “루머의 유포자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씨티그룹은 “수사 당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으며 우리 직원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 정부의 예민한 반응은 채무 조정설 등이 그리스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워 회생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유로존 나라 중 구제금융 1호 국가가 된 그리스는 1년이 다 되도록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유럽 금융권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스 경제는 지난해 4.5% 퇴보한 데 이어 올해에도 마이너스 성장(-3%)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리스가 갚아야 하는 빚은 2009년 2980억유로에서 2013년 3750억유로로 불어난다. 하지만 자금 조달의 유일한 통로인 국채의 수익률은 연일 치솟고 있다. 21일 그리스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장중 14.95%까지 올랐고, 2년물은 23.33%로 상승하며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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