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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26 13:42 수정 : 2011.05.26 17:36

야마다 야스테루. 마이니치신문 인터넷판 갈무리

60대 이상만 참가 가능…165명 지원

1960년 5월 일본이 미국 주도의 냉전체제에 가담하는 미-일 상호방위조약 개정(연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안보투쟁’이 벌어졌던 도쿄 나가타쵸(한국의 여의도 같은 정치1번지) 국회의사당 앞에 야마다 야스테루(72)도 참가했다. 당시 도쿄대 공대생이었던 야마다는 ‘사회주의학생동맹 부위원장’ 신분으로 안보투쟁을 이끌었다.

안보투쟁에서 패배한 뒤 일반 기업에 들어가 플랜트 건설과 수력발전 건설에 참여해 원자력에 지식이 있는 엘리트 엔지니어로서 반평생을 보낸 야마다는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다시 투쟁에 나섰다.

타도대상은 51년전과 같은 친미보수정권이 아니라 멜트다운 상태에 놓인 후쿠시마 제1원전. ‘후쿠시마폭발저지행동대’의 결성을 주도했다. 20대의 젊은이가 아니라 60대 이상만 참가할 수 있는 노인 결사대이다.

그는 지난 4월 6~8일 친구들과 전 동료들에게 이메일 500통과 편지 2000통을 보냈다.

“수천명의 숙련된 유능한 작업원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하청과 재하청에 의한 임시변통적인 작업원 모집으로는 수분간의 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신체의 면에서도, 생활의 면에서도 가장 방사능 피폭량의 해가 적게 끝나고, 게다가 이제까지 현장의 작업이나 기술능력을 축적해온 퇴역자들이 힘을 짜내서 다음 세대의 부정적 유산을 남겨주지 않기 위해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야마다는 호소문에 60살 이상의 참가 조건과 안보투쟁 당시의 경력을 첨부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25일치 <마이니치신문> 보도를 보면 참가 의사를 표명한 사람은 165명. 대학교수, 자위대원, 대형 크레인 운전기능사, 배관공, 요리사 등 직업도 다채롭다. 최고령자는 78살로 여성도 3명이나 손을 들었다. 연락한 이들 외에도 어디선가 행동대 모집 소식을 듣고 연락해오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습니다. 도쿄전력에 연락해 원전 복구 활동을 하겠다고 지원했지만 불가 통보를 받았다는 이도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부인들로부터 ‘남편이 참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야마다는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친구와 지인들에게 보낸 호소문에 학생시절의 사회주의학생동맹 부위원장이란 경력을 첨부한 것이 효과가 있었나요. 60년 안보투쟁의 투사라고 하니까요”라고 웃었다. “나는 기술자이기 때문에 곧바로 알았다. 원전사고 수습은 안정된 냉각설비의 건설, 유지보수,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거기다 방사능이 크게 오염된 환경 아래서 10년 단위로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친구와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누가 하지? 우리들이 할 수 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노인 결사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조금 비장감이 감돌았나요? 사지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관리된 조건에서 피폭을 최소로 억제해서 한다.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이 프로젝트는 우리들만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국가 차원의 조직을 설립하도록 여당국회의원들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간 나오토 총리의 귀에도 들리고 있는 듯한데요. 우리 행동대는 명부를 맡기고 중심 멤버로서 등록하면 된다. 그 조직이 기능을 하면 우리 프로젝트는 그뿐입니다.” 그는 20일 자신의 트위터(@officeyam)에 “현장에 가지 않고서도 여러가지 형태의 후방지원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참가자 중에는 젊은 시절 후쿠시마 제1원전 건설에 참여한 사람도 있다. 그는 야마다에게 “선생님, 부디 후쿠시마 사람들의 위기를 피할 수 있도록 나를 써주십시요”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쓰나미에 당한 원전의 건물에 관여했기 때문에 역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의 에너지라고 해서 크레인도 최첨단 기종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연히 스포츠신문에서 행동대를 알고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안보투쟁의 학생리더? 좌익이든 우익이든 상관없습니다. 가장 먼저 가고 싶습니다.”

일본은 관료주의가 워낙 발달한 나라인 데다 냉소적인 시각도 적지 않아 야마다가 만든 민간 행동대가 실제 후쿠시마 원전 수습에 활용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안보투쟁의 투사가 내건 ‘폭발저지’의 열정만은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쁜 나가타쵸 국회의원들보다 훨씬 뜨겁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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