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4 20:09
수정 : 2011.07.25 08:09
‘2차 범행지’ 아비규환 현장
오슬로 청사 폭탄테러 뒤
30km 떨어진 섬으로 이동
참가자들 안심시킨뒤 사살
22일 오후 3시26분(현지시각),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꽝’ 하는 폭음에 휩싸였다. 정부청사 옆길에 서 있던 차량에 있던 비료로 만든 사제폭탄이 터져 총리실이 부서지는 등 청사가 크게 파괴되고 7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 폭발은 처참한 비극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이날 오슬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퇴위아섬에서는 노르웨이 현 집권 노동당의 ‘청년정치캠프’가 열리고 있었다. 수십년 계속돼온 이 캠프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 수백명이 모여 노동당 정치인들과 소통하며 선거전략을 짜고, 또 일부는 짧은 여름 로맨스를 즐기기도 하는 젊은 정치인들의 축제였다.
오슬로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에 모두의 눈이 쏠려 있던 그날 오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페리를 타고 우퇴위아섬에 내렸다. 경찰은 그가 오슬로에서 폭발을 지켜본 뒤 30㎞ 정도 떨어진 섬까지 자동차로 이동해 페리를 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경찰복을 입고 있었는데, 우퇴위아에서 페리를 타고 나오면서 그와 마주쳤던 한 학생은 “우리는 수도에서의 폭탄테러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경찰복을 입은 그가 페리를 탈 때 사람들을 지키고 안심시키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환호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경찰복을 입은 그가 섬에 도착했을 때 섬에 있던 14~25살의 젊은이 600여명은 대부분 폭탄테러사건 소식을 듣기 위해 캠프의 중심건물에 모여 있었다. 브레이비크는 캠프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경찰이며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왔다고 설명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한 뒤 갑자기 자동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캠프 관계자인 아드리안 프라콘은 “자동소총은 자동발사가 아닌 단발로 설정돼 있었고, 그는 난사하지 않고 한발씩 쏴서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했다. 그가 매우 냉정하게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놀라서 흩어지고 난 뒤 그는 유유히 섬을 돌며 숨어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길이가 400m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에는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많지 않았다. 일부는 그가 경찰인 줄 알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숨어 있던 덤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살당하기도 했다. 일부는 500m 정도 떨어진 육지까지 헤엄을 치려고 시도했는데, 브레이비크는 물가에서 그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실종된 4명은 그렇게 사살돼 호수에 가라앉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총에 맞은 사람들을 발로 차면서 살아있는지 확인하거나 총을 몇발 더 쏘면서 확인사살까지 했다. 생존자 망누스 스텐세트는 “그는 마치 그가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것처럼 섬 안을 활보했고,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노르웨이 신문 <베게>(VG)에 말했다.
적어도 85명이 사망하며 우퇴위아섬이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난 1시간30분 뒤에야 노르웨이 경찰특공대는 현장에 나타났다. 경찰은 헬리콥터를 빨리 구하지 못해 배를 찾다가 출동이 늦어졌다고 해명하고 있다. 경찰이 도착한 것을 보고 범인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됐다.
‘노벨평화상의 나라’ 노르웨이는 2차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그 자신이 1979년부터 매해 빠지지 않고 우퇴위아섬 정치캠프에 참여했던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나의 젊은 시절 천국이었던 이 섬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며 비탄을 감추지 못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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