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통신 “앞 열차 시속 20km 서행중에 부딪혀”
자동 안전장치는 미작동…충돌 원인의혹 커져
당국, 일부 잔해 서둘러 묻어 ‘증거인멸도 의심’
지난 23일 일어난 중국 고속철 ‘둥처’ 추돌사고가 당국의 이례적일 정도로 빠른 사고현장 수습과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조차 승객들의 증언을 통해 선행열차가 벼락을 맞아 급정거했다는 정부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 철도당국은 25일 사고가 일어난 지 하루 반 만에 사고현장 정리를 끝내고 고속철 운행을 재개했다. 일부 잔해는 땅에 묻어버리고, 나머지는 저장성 원저우역으로 옮겨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국이 너무 수습을 서두르는데다 사고 뒤 사흘이 지나도록 명확한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아 ‘증거 인멸’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중국일보> 등이 26일 보도했다.
왕융핑 철도부 대변인이 일부 잔해를 파묻은 것은 복구를 위해서이지 증거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둘러싼 의심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을 타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에이피>(AP) 통신도 포클레인이 추돌차량의 운전석을 대충 해체한 뒤 땅에 파묻어버렸다는 목격자의 말을 전하며 사고 처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당국은 인명 구조와 사고 원인 조사에는 관심이 없고, 열차 운행 재개와 고속철 수출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왜 24일 오후 서둘러 구조작업 종료를 발표했는지도 의문거리다. 발표 이후 고가철도 아래로 추락한 객차 잔해에서 두살배기 여자아이가 발견되고, 그 뒤에도 잔해 더미에서 주검 세 구가 더 발굴됐다.
사고 원인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신화통신>은 25일 추돌 당시 앞뒤 열차에 탔던 승객들의 말을 소개하면서, 사고 당시 앞서 가던 D3115 열차는 시속 20㎞ 정도로 서행하고 있었고 뒤따르던 D301열차는 시속 100㎞ 안팎이었다고 보도했다. 벼락을 맞고 갑작스레 선행열차가 선 게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뒤에 오던 열차에 사고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는지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경화시보>는 상하이 철로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추돌사고 당시 앞차량의 통신시스템은 정상 작동 중이었고,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파손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통신시스템을 사용하거나 최소한 전화로라도 사고 사실이 뒤차에 전달되기만 했어도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추돌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으로 작동했어야 할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점도 수수께끼이다. 치치신 베이징대 교수는 “경보시스템이 먹통이 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아마 운영자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에이피> 통신에 말했다.
열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지, 희생자는 얼마나 되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당국의 발표를 인용해 26일 이 사고로 숨진 이가 기존에 알려진 43명보다 적은 39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종자 수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원저우 시내에 차려진 희생자 빈소에 “병원을 모두 돌았고 시신도 다 살펴봤지만 내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가족들이 수십명이나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거액의 배상금을 책정하며 희생자들 달래기에 나섰다. <동방조보>는 26일 철도부 등이 배상금 합의를 위한 32개 팀을 꾸려 7~10일 안에 합의를 끝낼 방침이라고 전했다. 배상금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400배가 넘는 1인당 최대 82만2000위안(1억3500만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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