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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외행보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동반자’ 만들기에 한창이다. 해묵은 러시아 및 인도와의 국경분쟁 매듭, 대만 정치인들의 잇따른 대륙 초청 등 거칠 것이 없어 보일 정도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서 시작된 실용주의 외교가 가히 절정에 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바탕엔 나라의 역량을 ‘국가 경제발전’에 집중하려는 속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북핵문제, 대일관계 등 여전히 잘 풀리지 않는 매듭도 있다. 4차 6자 회담 재개를 앞두고 최근 중국 대외전략의 지향점과 성과,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대북강경책 역효과 신중한 접근
대일 초강수 속 장기적 실력대결
6자회담이 ‘책임지는 대국’ 갈림길
2002년 11월 등장한 중국의 후진타오-원자바오 지도부는 집권 초기에 중대한 난제에 맞닥뜨렸다. 이른바 ‘2차 북핵 위기’다. 2003년 초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벌어진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은 초강경책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해 매일 2만배럴 정도씩 제공해 오던 원유 공급을 그 해 2월 일시 중단했다. 중국은 기술적인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조처였다. 격분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의 중국대사관을 찾아가 중국 대사에게 강력히 항의했다고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이 때 김 위원장이 원유 공급 회복을 요구하며 거론한 것이 바로 ‘대만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언급한 ‘대만 문제’란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대만과의 수교를 말한다. 북한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할 명분이 확실한 유일한 나라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하나의 조선’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경제카드’ 두나라엔 안통해 대북 강경책의 시행착오=2004년 7월 3차 6자 회담이 끝난 뒤 중국은 북한에 또 한 차례 북한의 심기를 건드렸다. 압록강 도하훈련이 그것이다. 중국은 “인명과 재산을 구제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은 부교를 북한 방향으로 곧게 펼 경우 이건 ‘도하훈련’이 된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이런 태도를 보여온 건 우선 북한의 ‘핵 카드’가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협상용’이 아니라 실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의 핵무장은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에 명분을 제공할 뿐 아니라 대만의 핵무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의 한 전문가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더 두려워하는 건 조선(북한)의 핵무장 그 자체보다 조선의 핵 보유로 인한 동북아 정세의 근본적 변화 등 파급효과”라고 지적했다고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중국의 이런 정책은 북한이 회담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최근 대북 제재와 압력 행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나친 압박은 상황을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고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도 중국만한 대외적 버팀목은 없다. 따라서 중국은 이번 4차 6자 회담에 어떻게 해서든 주도권을 쥐고 ‘소기의 성과’를 끌어내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대만야당 방중 운신폭 넓혀
일본과 중장기 실력대결=중국에 또하나의 외교 난제는 대일관계다. 고이즈미 총리의 잇따른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중-일 관계가 긴장국면에 접어든 이후에도 일본은 지난 2월 미-일 회담에서 대만해협을 미-일 군사동맹 이해지역 안에 포함시켜 중국을 자극했다. 이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 댜오위섬(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 역사 왜곡 교과서 등의 현안에서도 일본은 중국에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후진타오-원자바오 지도부 역시 일본에 대해 여러 차례 초강수를 썼다. 2004년 11월 아펙 정상회의 자리에서는 후 주석이 직접 고이즈미 총리에게 “야스쿠니 참배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5월24일 방일 중이던 우이 부총리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고이즈미 총리와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거기엔 일본의 정치·군사 대국화에 대한 견제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중국으로선 중-일 사이의 극한대립은 피하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부가 대일 강경책을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적인 ‘실력대결’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김희덕 중국사회과학원 대외관계연구중심 부주임은 중-일 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15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지난 4~5월 롄잔 국민당 주석과 쑹추위 친민당 주석 등 대만 야당인사들의 잇따른 대륙 방문을 이끌어냄으로써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주도권을 쥠과 동시에, 동아시아 문제에서의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중국이 북핵 문제와 대일관계를 좀더 유연하게 풀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대일관계는 장기적인 ‘실력 배양’을 통해 풀어가야 할 문제다. 그러나 당장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 북핵 문제는 중국이 외교 역량을 집중 발휘해야 할 문제다. 북·미 두 나라는 지난 9일 베이징 극비 회담서 7월 마지막 주 6자 회담의 재개를 약속했고, 후 주석은 어쨌든 올해 안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 가느다란 돌파구를 통해 중국이 북핵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데 어떻게 기여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 돌파구는 또한 중국이 ‘책임지는 대국’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세계에 과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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