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05 21:29
수정 : 2011.10.05 22:04
유럽·미국 주도 안보리 결의안 부결시켜
초안 3차례나 완화하고도 결국 휴짓조각
안보리 큰손 거부권에 국제사회 ‘무기력’
유엔의 시리아 관련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4일 반정부민주화시위대를 8개월째 무차별 학살하고 있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대한 경고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유엔은 지난 3월 이후 지금까지 시리아에서 2700여명이 정부군의 유혈진압과 무장충돌로 숨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번 결의안은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등 유럽국가들이 주도하고 미국이 적극 지원하는 등 15개 이사국 중 9개국이 찬성해 의결 정족수를 채웠으나, 상임이사 5개국 전원 찬성의 벽은 넘지 못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브라질, 레바논 등 4개국은 기권했다. 리비아에 대한 나토의 지나친 군사개입을 비난해온 ‘브릭스’(BRICS) 5개국이 모두 반대 또는 기권한 셈이다.
서방은 결의안의 안보리 통과를 위해 초안을 3차례나 완화한 최종안을 냈다. ‘시리아에서 심각하고 조직적인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모든 폭력의 즉각 중단, 책임자 문책, 인권 존중, 새로운 정치과정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초안에는 ‘시리아 정부가 이런 요구를 15일 안에 이행하지 않으면 제제를 포함한 구체적 수단을 적용한다’고 돼있었으나, 최종안은 이행시한을 30일로 연장하고 ‘여러 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고 물러섰다.
러시아와 중국은 “(결의안에) 군사개입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조항이 없으며, 시리아 국민의 대화에 의한 평화적 해결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유엔의 ‘리비아 결의안’의 명분이 ‘시민 보호’였음에도 나토의 군사개입이 리비아 내전 확대를 용인하는 구실로 이용됐다는 논리도 폈다. 중국의 리바오동 유엔대사도 “시리아에 대한 제재나 제재 위협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방의 반응은 격렬했다.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 회의석상에서 “시리아 결의안을 리비아 결의에 빗대는 것은 시리아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속하려는 나라들의 ‘천박한 책략’일 뿐”이라며 두 나라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라이스는 “중동 민중들은 이제 어느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무시하고 잔혹한 독재자를 지지하는 쪽을 선택했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며 “긴급한 (결의안 부결에) 미국은 격분한다”고도 했다.
결의안을 입안한 프랑스의 제라르 아로 유엔 주재 대사도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는 시리아 민중이 쟁취하려는 합법적 권익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표결 직후 바샤르 자파리 유엔주재 시리아 대사가 “서구 강대국들이 인도주의적 문제를 시리아를 흔들고 이스라엘의 중동 헤게모니를 보장하려는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며 결의안 부결을 환영했으나, 라이스 미국 대사는 시리아 쪽의 발언에 항의해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유엔안보리의 시리아 결의안 부결은 세계 5대 강대국인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게 됐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대량학살’ 등에 대한 제재 결의안에는 거부권 행사를 금지할 것을 촉구해왔으나 실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팔레스타인이 최근 유엔에 제출한 독립국 승인 결의안은 국제사회의 전반적 지지에도 미국이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결의안을 무산시키면서, 미국이 팔레스타인 독립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정치적 부담이 덜어진 것은 역설적이다.
1945년 유엔안보리가 구성된 이후 가장 최근인 2008년까지 거부권 행사는 러시아(옛소련 포함)가 124차례로 가장 많으며, 이중 121건이 냉전시기인 1995년 이전에 행사됐다. 미국이 82회로 두번째인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이스라엘을 보호한 것만 32건이다. 나머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는 영국 32회, 프랑스 18회,중국이 6회에 이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유엔안보리 ‘거부권’ 유엔 안보리는 유엔헌장 제24조에 의거해 5개 상임이사국과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 등 15개국으로 구성된다. 안보리의 ‘결정’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따라야 하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명시된 조항은 없다. 그러나 유엔헌장 27조는 안보리 의결 요건으로 △1개국 1투표권 △9개국 이상 찬성 △상임이사 5개국의 동의를 규정해 사실상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유엔헌장 개정도 안보리를 거쳐야 한다.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