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이 본 월가 시위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민주·헌법적 움직임으로 변모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자본주의 금기는 깨졌다…대안 생각할 때 됐다 마이클 월저
사회단체들 연계 통해 더 확산될 가능성 높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월가 현재 모습은 왜곡된 경제일 뿐이다 ‘월가 점령’ 시위는 한때의 소란인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태동인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에 대한 전세계 진보적인 석학들의 분석과 지지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월가 시위가 ‘왜곡된 자본주의에 대한 항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 운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제국> <다중> 등의 저서를 통해 21세기 신좌파운동의 기수로 떠오른 미국의 마이클 하트(듀크대 문학과 교수)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전 프랑스 파리8대학 정치과학과 교수)는 11일(현지시각) 미국 정치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사이트에 ‘월가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진짜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란 기고문을 올렸다. 이들은 월가 점령 시위가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더 중요한 정치적 불만 때문에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 “이 시위가 민주적이고도 헌법적인 움직임으로 변모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월가 점령 시위가 이집트, 스페인, 그리스, 이스라엘의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결국 민중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정치와 정당에 대한 비판에서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현재 정치체제의 대안이 이 시위에서 태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명확한 지도자 없이 집단 토의를 통해 결론을 내려가는 시위의 모습 자체가 새로운 시스템의 단서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월가 점령 시위에서는 ‘마틴 루서 킹’(지도자)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대표자 없는 수평적인 구조가 발전 그 자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것이 결국 ‘진짜 민주주의’라는 설명이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스타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의 접근은 더 급진적이다. 그는 지난 9일 시위대가 머무르는 뉴욕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에 나타나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현재의 방만한 시위 상황에 대해 “카니발은 싸구려가 된다”고 경고하며 “우리는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뒤이어 “우리는 가장 멋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대안을 생각할 때가 됐다. 금기는 깨졌다”고 외쳤다. 그는 시위대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를 밝히는 진짜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것이며, 현재의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구조를 이야기할 때라고 주장한다. ‘다원적 정의론’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월저는 11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강연에서 월가 점령 시위를 ‘아랍의 봄’, 스페인 시위 등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하고, 여러 사회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더 확산돼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지난 2일 시위 현장을 찾아 “월가의 현재 모습은 자본주의도, 시장경제도 아닌, 왜곡된 경제”라며 이 운동을 지지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경제특보를 맡고 있는 경제학자 제프리 색스(컬럼비아대 교수)도 지난 7일 시위대와 만나 “모든 돈이 부유층으로만 가면서 나라가 엉망이 되고 있다”며 “(월가 점령 시위는)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본 사람들의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의 예상대로 점령 시위는 이제 평등과 재분배를 요구하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발표하는 등 ‘행동’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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