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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5 11:44 수정 : 2011.10.15 11:44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포르노 보는 남자…’ 성욕관련 데이터 최초 분석 눈길

앨프리드 킨제이는 원래 벌을 연구하는 곤충학 교수였다. 그는 1940년 18년간 연구해온 벌 대신 인간의 성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킨제이는 무려 1만8000명을 일일이 만나 면접조사했다. 그 결과 남성의 36%가 동성애를 경험했고 55%의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가졌다는 당시로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선보였다. 덕분에 그는 공산주의자 혹은 악마로까지 몰렸다.

킨제이의 집요한 조사는 과학계에서는 처음 있던 일이었고 지금도 어려운 일로 평가된다. 면접 대상자 90% 이상이 미국 중서부 백인 고학력자였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의 보고서를 뒤집을 만한 연구는 거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추려는 성문제를 면접조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이야기 자체를 꺼리는 여성의 성문제는 우주를 탐사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성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인터넷이다.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사용하는 인터넷은 사람들이 무엇을 검색했는지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킨제이처럼 가가호호 방문해 조심스럽게 묻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셈이다.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는 인지신경과학자 두 명이 인터넷에 투사된 남녀의 성욕 관련 데이터를 최초로 분석한 ‘21세기판 디지털 킨제이 보고서’ 같은 책이다. 세계 남녀 50만명이 검색한 10억건의 웹 검색 내용과 수천편의 디지털 로맨스 소설, 4만개의 성인 웹사이트를 조사해 이 책을 썼다.

1991년 인터넷이 막 뜨기 시작할 무렵 미국의 포르노 사이트는 90개에 불과했지만 올해 초 유해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에 등록된 포르노 사이트는 무려 250만개에 이른다. 질적 변화도 비약적이어서 검색창에 발정난 염소와 섹스하는 동영상을 찾아달라고 하면 염소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적시해달라는 답변이 나올 정도다.

그러면 이 음란의 바다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은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젊음(youth)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40대, 50대에 대한 검색도 많았다. 노인들도 포르노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음이 게이, 30대 유부녀(MILF, mother I’d like to fuck), 가슴이었다. 남자들이 젊고 가슴 큰 여자를 선호하는 것은 진화론이나 생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게 지은이들의 설명이다.

세밀히 들여다보면 남성과 여성의 욕망은 완벽하게 다르다. 이 책은 이 부분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남녀의 성욕 차이에 대한 설명은 인간의 성욕을 설명하는 데뿐 아니라 동성애자와 성도착증 환자의 성욕을 분석하는 데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남자의 성욕은 가짜 토끼를 봐도 무작정 총질을 해대는 애니메이션 속 사냥꾼 캐릭터 ‘엘머 퍼드’, 여자의 성욕 처리 시스템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할머니 탐정 ‘마플 부인’으로 비유하며 남자와 여자의 전혀 다른 성욕을 포르노 사이트, 성인소설, 옛사랑을 찾는 광고 문구 등의 수많은 예를 통해 들여다본다. 기발함까지 느껴지는 예를 써가며 남녀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남녀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하는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성생활 버전과도 같다.

현존하는 인간의 디엔에이를 분석해보면 여성은 80%가 후손을 보는 데 성공했지만 남성은 40%만 성공했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많이 후손 남기기에 성공한 것은 여성 특유의 조심성 때문이었다. 가임 여성은 양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는 순간에서 배란마저 멈춰버린다. 반면 남성은 전쟁과 죽음 같은 위기의 순간에 더 흥분한다. 어떻게든 후손을 남겨야 한다고 진화되어 온 탓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성기 중심의 역겨운 포르노 대신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로맨스 소설은 후손낳기에 성공한 여성의 선택이 농축돼 있다. 성애 묘사는 적고 대신 잘생기고 부자인 남자 주인공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남자들은 혐오할 이중인격의 캐릭터들이지만 여성들에겐 가장 안정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이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과거 운명 따위에 맡기던 성문제를 원하는 대로 개척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며 남녀의 성적 욕망은 앞으로도 더욱 다양하게 세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다양한 남녀 성욕의 차이에 대해 좀더 이해하면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만족감을 얻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교육받은 백인 남성들이 깔끔한 성생활을 한다는 킨제이 보고서와는 사뭇 다른 결론이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이미지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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